검찰 '김대업 학습효과'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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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대선 후보들의 고소.고발사건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이른바 '김대업 학습 효과'다. 수사에 착수하는 순간 사건의 진위를 떠나 후보는 타격을 보고, 편파수사 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이명박 후보 지지 모임으로 알려진 '희망세상21 산악회'에 대해 압수수색을 해 공정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명박 후보 비판→선관위의 수사 의뢰→전국 공안부장 회의→압수수색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처리가 신속히 이뤄진 점이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주요 인사와 관련된 검찰 수사는 통상 대검-법무부를 거쳐 청와대에도 보고된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청와대와 사전 조율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검찰 수사 배경.시점 논란=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19일 희망세상 21 산악회 김모 대표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했다. 검찰은 올해 5월 산악회 측이 회원 200여 명이 모인 행사에서 300여만원어치의 식사를 제공한 부분에 대해 조사를 했다. 산악회 측은 검찰에서 사전선거운동 사조직 결성 불법 기부 의혹을 받고있다. 앞서 검찰은 18일 산악회의 서울 삼성동 본부 사무실과 대표 김모씨 집을 압수수색했다.

이 후보가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난 지난해 6월 출범한 이 단체는 1년 만에 전국에 30만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검찰이 특정 후보와 관련된 불법 선거운동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기는 처음이다. 신종대 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산악회 측이 수사 중인 것을 알고 있어 신속히 수사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압수수색은 선관위의 수사의뢰 이후 3일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검찰에 걸려 있는 다른 고발.수사 의뢰 사건도 많은데 이 같은 신속한 압수수색은 이례적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지적이다. 압수수색을 벌인 18일은 대검에서 전국 공안부장 회의가 열린 날이다. 검찰 내부에서 김대업 학습 효과를 의식하면서 "더 이상 편파 시비에 휘말려선 안 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 선관위 고발.수사 의뢰 28건=본지가 19일 검찰과 선관위에서 단독 입수한 '17대 대선 관련 조치 내역'자료에 따르면 선관위가 검찰에 고발.수사 의뢰한 사건은 28건. 이 중 이 후보와 관련된 사건이 14건(고발 6건, 수사 의뢰 8건)으로 가장 많았다. 박근혜 후보와 관련된 수사 의뢰는 4건이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고건 전 총리(고발 1건),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수사 의뢰 1건)도 각 1건씩이다.

김종문.정효식 기자

◆ 김대업 학습 효과=2002년 김대업씨가 제기했던 이른바 '병풍' 의혹은 대선 이후 검찰 수사에서 거짓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지난 대선을 4개월여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아들 정연씨의 병역 면제 과정에 청탁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은 대선이 끝난 이후인 2003년 2월 '혐의 없음'으로 마무리했다. 당시 검찰은 의혹만 부풀린 채 대선 이후 수사를 종결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선거 과정에서 터져나오는 각종 의혹을 유권자들이 무작정 믿어서도 안 되며, 검찰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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