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49. 최상호 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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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상호 프로가 퍼팅 연습을 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 출신인 최상호 프로는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중학생 때부터 뉴코리아골프장 내 연습장에서 티켓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마치 내가 어릴 때 서울컨트리클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최 프로는 정신력이 강하다. 특히 집중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보다 투철한 프로 정신을 갖고 있는 골퍼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프로골퍼는 고집이 있어야 한다. 한 번 익힌 스윙 자세는 절대로 바꾸면 안 된다. 최 프로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자신의 스윙을 한다. 상체를 약간 구부리는 특유의 어드레스 자세와 탄도가 낮은 드로 구질을 고집하고 있다. 보통사람은 그렇게 하기 힘들다. 최 프로는 자신에게 최적합한 스윙으로 샷의 거리도 내면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다. 선배로서 정말 칭찬해 주고 싶다.

이 기회를 통해 내가 최 프로에게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신인 시절 최 프로는 연습을 할 수 있는 마땅한 골프장이 없어 타워호텔 연습장에서 훈련했다. 그땐 연습장에도 캐디가 있었다. 어느 날 타워호텔 연습장에서 훈련하고 있는 최 프로의 자질을 알아본 한 선배가 캐디에게 "최상호 프로의 공은 한 개라도 반드시 닦아서 줘라"고 일렀다. 공에 모래가 붙어 잘못 맞은 타구가 나오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 선배는 남서울컨트리클럽으로부터 "헤드프로로 오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감사하지만 나는 나이도 먹고 여유도 있으니 최상호라는 후배를 데려가시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를 데려가 라운드를 많이 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고 당부했다.

최 프로가 남서울에서 헤드프로를 지내며 '한국 프로골프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된 배경이다. 그는 이제 부와 명예, 모든 것을 얻었다. 예전에 그 선배가 후배에게 베풀었던 것처럼 이젠 최 프로가 후배들을 보살펴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최 프로는 앞으로 2~3년은 더 뛸 수 있을 것이다. 또 그가 갖고 있는 한국 최다승 기록도 쉽게 깨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항상 자긍심을 갖고 한국골프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활약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의 스윙은 정통파 스윙은 아니다. 체격이 작은 아마추어 골퍼는 참고할 만하다. 드로가 걸린 공은 런이 많고, 페이드가 걸린 공은 높이 뜨면서 지면에 닿으면 곧 멈춘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프로골퍼는 아마보다 거리 걱정을 덜하므로 하이 페이드 구질을 선호한다. 최경주 프로의 아이언 샷 구질이 바로 하이 페이드다. 그린이 단단하고 빠른 미국에서 그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이유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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