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건 쌀개방 반대/박태욱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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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화된 가운데 각 후보들의 「말잔치」가 더욱 풍성해졌다.
국회의원 선거도 아니고 이른바 「대권」이 걸린 경쟁이어선지 발언의 강도도 한층 높아져 이젠 공약 이행에 대한 약속도 「당력을 기울여」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직을 걸고」까지로 「격상」됐다.
전통적으로 중요한 표밭으로 인식되고 있는 농민층에 대해 각당은 저마다 무더기 공약을 쏟아내고 있고 그중 누구도 빼놓지 않고 거론하는 것이 「쌀 시장 개방 절대불가」다.
이 공약은 3당이 경쟁적으로 내놓은 방대한 공약집에 어김없이 중요사항으로 들어있고 최근 시작된 유세에서도 입을 모아 이같은 약속을 강도 높게 되풀이하고 있다.
쌀 시장개방이 우리 농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고 또 현시점에서 쌀 시장 개방만큼은 막아야한다는 것이 우리 국민의 전반적 정서인 것이 분명한 만큼 국민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각당 후보들이 이같은 약속을 하는 것은 이해할만도 하다.
이같은 와중에서 민자당 김영삼후보는 22일 유세에서 쌀시장 개방은 「대통령직을 걸고」 막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쌀시장 개방 불가라는 입장은 기본적으로 「쌀을 비롯한 안보관련 기초식량에 대해서는 관세화 예외인정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표현이다.
「쌀시장 개방」이란 압력은 세계무역구조 재편과정의 일부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 입장에서 농산물의 전면적인 수입개방,특히 쌀의 수입개방은 저지해야할 목표임에 분명하지만 이 판단은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타결이 의미하는 전체적인 이해득실의 기반위에서 내려져야 한다.
현재의 국내 상황이 「쌀시장 개방 불가」이외의 목소리를 내기 힘든 시점이란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해도 적어도 나라전체의 명운을 맡겠다고 나선 대권후보가 이같은 목표에 「대통령직을 걸겠다」고 나선 것은 「의도」는 알겠지만 「표현」이 너무 가볍다고 아니할 수 없다.
더욱이 「선진경제 진입을 위한 실리경제외교의 강화」를 또다른 공약으로 내건 정당의 발언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직 정식등록은 안했지만 출마를 천명한 백기완후보가 쌀시장 개방불가는 물론,전체적으로 경제적 「쇄국정책」에 가까운 공약을 내건 것이 차라리 논리적으로는 보다 일관성이 있는 셈이다.
「대통령직을 걸고」 쌀시장 개방을 막겠다는 후보가 당선된 후 만약 쌀시장 개방이 이뤄질 경우 대통령직을 물러날 것이라고 믿을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이 책임질 일은 크고 무거우며 말이란 그리 쉽게 하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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