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한번 더 위반하면 … " 마지막 경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고현철 중앙선거관리위원장(中)이 18일 밤 전체위원회의를 마치고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선관위원들은 최근 대통령의 선거 관련 발언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결정을 내렸다. 왼쪽은 이기선 선관위 사무차장, 오른쪽은 조영식 선관위 사무총장. [과천=강정현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한 번만 더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하는 발언을 할 경우 사전 선거운동으로 결정하겠다"는 취지다.

선거중립의무 위반과 달리 사전 선거운동은 검찰 고발도 할 수 있는 '중죄'다.

중앙선관위의 18일 결정은 노 대통령의 참여정부 평가포럼 발언에 대해 선거중립의무 위반이라고 적시했던 7일 결정에 비해 톤이 훨씬 강력하다.

노 대통령이 선관위의 결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선거법 자체가 문제라는 발언을 한 데 대한 선관위원들의 '분노'가 담겨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령 7일 발표 때는 "특정 정당의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폄하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말했으나 이번엔 "특정 정당의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폄하하고"라는 단정적 표현을 사용했다.

특히 관심 가는 대목이 사전 선거운동에 대해 판단 유보한 부분이다.

선관위는 7일 회의에서 고현철 위원장이 결정권까지 행사하는 진통을 겪은 끝에 사전 선거운동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대통령의 발언이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해선 앞으로 상황을 지켜본 뒤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7일 회의 때는 그 정도로는 사전 선거운동이 아니라고 명시적 결론을 내렸지만 이번엔 그렇게 볼 수도, 안 볼 수도 있다는 것이어서 강도가 높아진 것"이라며 "다음에 또다시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번에 판단을 유보한 사항까지 모두 사전 선거운동 내용에 포함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나라당은 사전 선거운동 부분에 '위반 결정'이 아닌 '판단 유보'를 내린 것은 대통령의 눈치를 본 행태라고 비난했다.

◆"대통령에 기회 한 번 더 주자"=이날 오후 4시20분쯤 시작한 전체회의는 밤 10시20분이 넘어서야 끝이 났다. 회의 도중 일부 선관위원들은 노 대통령이 선관위 결정이 내려진 지 하루 만인 8일 선관위 판단에 불복하며 잇따라 선거 개입 발언을 쏟아낸 데 대한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한 선관위원은 "회의 때 대통령의 발언은 사전 선거운동으로 봐도 된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최종적으로 대통령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대신 이날 발표문엔 "7일 참평포럼에서의 대통령 발언이 선거중립의무에 위반됨을 결정하고 대통령에게 선거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했음에도 재차 이런 사태가 발생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는 대목이 들어갔다.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문도 지난번엔 '선거법 준수 요청'이던 것이 이번엔 '선거법 준수 촉구'로 바뀌었다.

선관위는 발표문 마지막에 "다가오는 대선이 공명정대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엄정한 법집행을 재삼 다짐함과 아울러 선관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선 단호히 대처해 나가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이가영 기자<ideal@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