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Report] '대학 독립' 출발점은 재정 독립인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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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일부 대학이 대입에서 내신성적 비중을 줄이려다가 교육부가 돈줄을 끊겠다고 하자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며칠도 넘기지 못할 객기를 부린 대학도 우습지만 돈으로 교육계를 좌지우지하는 교육부의 전횡도 못마땅하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돈을 교육부에 맡기고 또 교육부가 그렇게 많은 돈을 대학에 대주는 줄 이번에 알았다. 아니 우리 대학들이 이렇게 궁한 줄 몰랐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게다. 교육부가 1년에 4조5000억원을 대학에 쓰는데, 그중에서 연구사업비 등 교육부의 입김이 들어가는 부분이 1조8000억원이라고 한다. 이 부분이 대학을 꼼짝 못하게 하는 돈이다. 이번에 밝혀진 사실은 교육부로부터 연구사업비를 타 쓰려면 연구능력보다 '교육수준을 낮추는 입시절차를 무조건 따른다'는 게 더 중요한 자격요건이라는 점이다.

이번 일로 대학들은 그들도 '큰 정부'의 폐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공무원을 많이 두고 그들에게 분에 넘치도록 많은 예산을 맡겨놓다 보면 그들은 그 돈을 국민 위에 군림하는 데 쓰기 마련이다.

이보다 더 큰 우리의 깨달음은 자율도 결국은 돈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돈 달라고 손을 내밀면서 자율을 달라고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는 돈이 낀 어느 관계에든 통하는 상식이다.

자식이 부모에 얹혀 살고 부모에게 용돈과 생활비를 타 쓰면서 부모에게 '내 마음대로 하게 해 달라'고 하기 힘들듯이, 공기업이 적자를 정부더러 메워달라고 하면서 경영의 자율을 달라고 할 수 없고, 출연 연구기관이 예산의 대부분을 정부에서 타 쓰면서 연구 자율 운운할 수 없다는 얘기다.

기업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이 정부에 빌붙어 산다. 경제개발 사업만 해도 1년에 28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 이렇듯 정부에 기대어 살면서 '기업을 자유롭게 해 달라' '규제를 풀어달라'고 할 면목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규제완화를 외치는 기업들에 대해 공무원들이 콧방귀를 뀌는 것이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입학이든 정원이든 학사관리든 대학이 자기 마음대로 하려면, (멋있게 말해) 재정 자립을 해야 하고 (정확히 말해) 정부에 손을 벌리지 말아야 한다.

외국 대학을 보라. 재정의 대부분을 정부에 기대는 유럽 대학들, 그래서 하향평준화 규제에 찌들어 그렇고 그런 수준의 유럽 대학들 말고, 입시나 정원 등에 구애받지 않고 수준 높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선진국 대학들을 보라. 이들은 운영 재원의 대부분을 학생의 등록금, 동문의 기부금, 재단의 전입금(그리고 최근에는 기업들의 산학협력기금) 등 이해 관계자들이 나서서 마련한다. 그러니 강의 및 연구시설과 교수 등 대학 설립요건은 엄격해도 정원이나 입학절차 등에 관해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대학의 입지를 걸인 수준으로 전락하게 한 데 교육부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그 일차적 책임은 대학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재원을 마련해 주지 않은 학생.동문과 재단에 있다. 그 다음 책임은 이들을 설득하지 못한 교수들에게 있다는 얘기다. 이번 일이 있게 한 근본적인 책임은 장관이 부총리급인 교육부를 두고 그 부처를 이런 발상이나 하는 공무원으로 채우고, 그들에게 그 많은 예산을 맡긴 국민과 국회에 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입 다물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저 고등학교와 대학의 교육 수준이 바닥 없이 해가 갈수록 내려앉는 걸 지켜보는 도리밖에 없다. 교육부를 없애든가 아니면 나라에 기댈 필요 없게 두둑한 돈주머니를 찰 때까지는.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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