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김정일의 건강과 후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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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국내외의 시선을 끌고 있다. 김 위원장 1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돼 있는 북한 권력구조의 속성상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장래와 직결된 문제다. 김 위원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당뇨와 심장병 같은 지병을 앓아 왔다. 따라서 그의 건강 이상설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특별히 관심을 끌 만한 일도 아니다. 적어도 김 위원장의 건강 '심각설'이나 '악화설' 정도는 돼야 무릇 뉴스감이 된다.

최근 김 위원장이 권위 있는 독일 의사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심장수술을 받았다는 외신보도가 있었다. 미국 국무부도 김 위원장의 건강을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수술대 위에 올랐다는 것만으로 마치 북한에 큰 문제가 터지거나 터질 것으로 예단하는 것은 일종의 해프닝에 가깝다. 김 위원장이 수술을 받았다는 설이 사실이라면 전보다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역설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딕 체니 미 부통령은 하원의원 시절인 1978년 처음 심장발작을 일으킨 뒤 심장병을 앓아 왔다. 2000년 3월과 2002년 6월 두 차례에 걸친 심장수술을 받고도 정상적으로 부통령 직을 수행하고 있다.

결국 눈여겨봐야 할 것은 김 위원장이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건강 이상설을 불식하기라도 하듯 6월 초부터 자강도와 평안북도에 있는 군부대들을 시찰하고 경제단위들을 현지지도했다. "보도된 대로 김정일 위원장이 5월에 수술을 받았다면 6월 초 현지지도가 가능할 수 있겠느냐"는 국정원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설령 김 위원장이 수술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의 최근 현지지도는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최근 현지지도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북한 당국의 조작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모든 매체를 국가가 장악.통제하고 있는 북한 체제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 보자. 이라크 전쟁이 한창일 때도 김 위원장은 장기간 현지지도를 수행하지 않았고, 이를 두고 구구한 억측이 분분했다. 그중에서도 미군의 폭격이 두려워 피신했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을 '겁쟁이'로 풍자한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북한 당국 입장에서 보면 이는 '최고사령관'이자 '혁명의 수뇌부'에 대한 크나큰 모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가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례는 없었다. 매체를 통한 조작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이때는 왜 그런 조작을 하지 않았겠는가.

물론 김 위원장의 현재 건강상태는 정상적이지 않다고 봐야 한다. 여러 징후나 북한에 대한 정보.보도 등을 종합하면 김 위원장의 건강에 다소 이상이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물리적인 나이만 해도 만 65세로 후계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는 자연스러운 시점에 와 있다. 그러나 업무수행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후계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당장 누구를 후계자로 지목하기보다 당분간 자식들 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해 지도자로서 자질을 키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그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부족 등 후계군이 갖고 있는 한계와 후대에 직면할 여러 장애 요소들을 고려해 다음 시대에 맞는 권력구조의 기초를 다지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 가운데 하나가 입헌 수령제다. 즉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 카리스마에 의존했던 수령의 지위를 헌법상 '나라의 최고직책'으로 명문화하고 실질적인 정책은 당.정.군의 '충성스러운' 핵심 엘리트 집단에 맡기는 방식이다. 기존의 유일지도체제와 새로운 '집체적' 지도체제의 절충 또는 수렴형의 권력구조를 선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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