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할리우드 - 충무로 간접광고 … 요리법 다르니 맛도 다르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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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사전정보 없이 '오션스 13'(14일 개봉)을 보러 가는 국내관객이라면, 삼성의 브랜드 파워에 깜짝 놀라실 수 있겠습니다. 영화 속에 삼성 휴대전화가 명품이라는 게 퍽 인상적으로 언급됩니다. 악덕 카지노 업자로 나오는 알 파치노가 초반에 이 휴대전화를 구해내라고 독촉하는데, 비서는 이 명품을 구하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식으로 답하지요. 명품의 위력은 막판에도 등장합니다. 통신보안이 철저한 상황실 안에서 알 파치노가 자기 전화는 통화가 된다며 자랑을 하지요.

'오션스 13'이 삼성 휴대전화를 이렇게까지 소개한 이유를 설명하자면, 간단합니다. 이른바 PPL(Product Placement), 즉 영화 속 간접광고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휴대전화는 시판용이 아니라 금과 보석을 입혀 특수제작해 삼성이 협찬한 물건이라고 합니다.

간접광고에 대해 할리우드는 꽤 너그러운 편입니다. 공공의 재산인 전파를 이용하는 TV는 물론이고, 관객이 돈을 내고 보는 극장에서도 간접광고가 종종 논란을 빚는 우리와는 다른 듯합니다. '오션스13'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오프라 윈프리의 실제 토크쇼를 봐도 그렇지요. 영화 개봉이나 DVD 출시에 맞춰 배우가 이 쇼에 출연할 때면, 윈프리는 '꼭 볼 만한 영화'라고 서슴없이 추천을 하곤 합니다. 출연목적은 영화홍보임이 분명한데도, 대개 변죽 울리는 얘기와 맞장구만으로 끝나는 국내 토크쇼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지요.

사실 국내영화에도 모 휴대전화가 PPL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 영화는 여주인공이 나왔던 CF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정작 이 휴대전화는 별 조명을 못 받았습니다. 관계자에게 얘기를 듣고 나서야, 여주인공이 범인을 추적하는 와중에도 남자친구와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는 장면이 꽤 많았던 게 기억나더군요.

굳이 이 영화와 '오션스13'을 비교하자면, 간접광고의 요리법에 좀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전자는 지극히 일상적이지요. 이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휴대전화가 필요한 장면이니까요. 이런 식으로 대입하면 간접광고 대상은 무궁무진합니다. 식당 장면에 자주 등장해서 외국인 관객이 그 정체를 궁금해 한다는 '녹색 유리병'(소주)이 한 예입니다. 그렇다고 나오는 장면마다 협찬을 구하기에는 효과가 좀 의심스럽지요. 이 유리병에 편지를 담아 태평양에 띄우는 장면이라도 있으면 모르지만요.

'오션스13'에는 알 파치노의 비서가 "삼성 회장과 볼링까지 쳐서" 휴대전화를 구해왔다고 자랑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분이 볼링을 치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실제와 다른 '뻥'이라는 느낌은 듭니다. 영화는 결국 허구의 장르입니다. 얼치기 홍보보다 뻔뻔함이 더 재미있을 수 있는 무대지요. 그 홍보의 대상이 다른 상품이든, 영화 자체든 말입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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