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없는 종말론(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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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종교사학자들은 인류의 역사속에 등장한 종말론을 크게 두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종말론의 내용과 그 바탕이 되는 세계관에 있어서 신중심의 사고로 구성된 것과 인간중심의 사고로 구성된 것이다.
신중심의 종말론은 종교와 교회의 권위를 강화하고 인간에 대한 위협적 도구로 작용하는게 특징이다. 기독교의 종말론,잉카­아즈텍의 종말론,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론을 들 수 있다. 특히 13세기 중미유카탄반도에서 찬란히 꽃피웠던 아즈텍문명의 멸망과정을 종말론의 대표적 사례로 꼽는 것은 흥미롭다.
신과 같은 권위의 지배자에 의해 다스려지던 아즈텍문명은 석기시대의 생산력으로 인구 16만명의 도시를 유지해야 했다. 따라서 주민을 통제하고 절대적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종교와 결합된 절대권력이 필요했다. 그 절대 권력을 바로 종말론에 의존한 것이 아즈텍의 비극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종말론이 예언한 해에 쳐들어온 스페인의 약탈자 코르테스의 무장병 2백명에게 10만명의 아즈텍군은 무력하게 굴복한 것이다. 종말론을 너무 신봉했기 때문이다.
인간중심의 종말론은 현실세계에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변혁의 의지와 소망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동학의 개벽사상도 그런 종말론의 하나로 할 수 있다.
종말론은 기원전 2000년께 고대 페르시아에서 처음 등장한 이래 한때도 인간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고대의 종말론에서 현대의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종말론은 인간 개인이 지닌 죽음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과 집단의 멸망에 대한 공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데 일치한다. 하지만 종말론이 융성하고 쇠퇴하는 것은 그 사회의 현실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도덕적으로 건강한 사회에서는 종말론이 발붙일 곳이 없다. 부정과 비리와 불만이 팽배한 사회,그래서 무엇인가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에서만 종말론은 싹튼다.
그동안 온 나라 안팎을 시끄럽게 했던 종말론자들의 「휴거」가 아무 뒤탈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왜 그와 같은 극단론이 이 사회에 뿌리내리게 되었는가를 곰곰 생각해 볼때가 되었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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