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따지면 휘발유세 일본의 3~4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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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이 L당 1800원을 넘보는데 정부와 정유사의 '네 탓' 공방에 소비자는 어리둥절하다. 소비자 부담이 느는데도 정부와 정유사는 '돈 잔치'를 벌였다. 정부는 지난해 자동차 관련 세금만 29조 원을 거둬들였다. 1년 전보다 11.6% 늘었다. 기름값이 오르면 덩달아 오르는 세금 덕이다. 정유 5사도 지난해 2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기름 장사에선 재미를 못 봤고 석유화학 제품에서 마진이 많이 났다"는 게 정유업계의 입장이다. 그러면서 정유사들은 고급 휘발유를 더 팔기 위해 옥탄가를 슬그머니 낮춘 눈가림 상술은 꼭꼭 숨긴다. 천정부지인 기름값을 둘러싼 4대 미스터리를 짚어본다.

① 기름값 비싸야 소비 덜 하나?
이미 생필품 … 2000년 이후 증가세

정부는 기름에 붙는 세금을 낮추라는 요구가 나올 때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할 때 세금 부담이 많지 않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휘발유 가격 대비 세금 비중은 58%로 30개 OECD 회원국 가운데 14위로 중간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을 감안하면 한국의 휘발유 가격이나 세금 부담은 일본의 3~4배다. 정부는 석유 소비를 줄이기 위해선 고유가 정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2000년 이후 휘발유.경유 가격이 크게 올랐지만 소비는 되레 늘었다는 점이다. 휘발유.경유가 생활필수품의 일부가 됐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KIET)은 휘발유.경유의 가격 탄력성이 낮아 가격을 올려도 소비를 줄이는 효과가 별로 없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정부는 세금을 낮춰도 실제 소비자가 인하 효과는 없다고 주장한다. 유통 과정이 복잡해 결국 정유사나 주유소의 배만 불릴 거라는 얘기다. 그러나 정부는 11일 수입 석유제품의 할당 관세를 낮추면서 소비자 물가를 0.03~0.05%포인트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수입 휘발유.경유에 붙는 관세 인하는 소비자가를 낮추는 효과가 있고 국산 휘발유.석유에 붙는 세금 인하는 효과가 없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② 정유사 이익률 진실은 업계 계산대로라도 마진폭 너무 커

재정경제부는 올해 휘발유의 소비자 가격 상승분(L당 123원) 가운데 85원(69%)이 정유사의 정제 이윤으로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12월 L당 144원이었던 정유사 마진이 지난 5월 229원까지 치솟은 탓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재경부의 정제 마진은 휘발유 값과 원유 도입가를 단순 비교해 계산한 것이어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B정유사가 두바이유를 기준으로 모든 종류의 기름을 정제하는 데서 거둔 평균 마진을 계산한 수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정유 마진은 L당 5.6원 적자였다. 올 4월엔 L당 22.9원, 5월에는 26.5원이었다. 따라서 지난해 12월 이후 올 5월까지 정제 마진 증가 폭은 L당 32.1원에 불과하다. 재경부가 제시한 85원 증가와 거리가 있는 수치다. 그러나 정유업계 주장을 따르더라도 정제 마진의 증가 폭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유사는 지난해 2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도 석유화학 부문에서 이익이 많이 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제 부문과 석유화학 부문이 쓰는 설비를 두부 자르듯 구분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제 부문 이익을 석유화학 부문으로 전가했다는 의혹도 고개를 들고 있다.

③ 수입 석유제품 경쟁될까 국제 원유가 급등해 별 효과 없어

재경부는 2002년 수입 석유의 시장점유율이 7.8%에 달할 때는 수입산과 국산 사이에 가격 경쟁이 치열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국내 정유사는 시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주유소에 최고 L당 150원까지 공장도가를 깎아주는 할인 경쟁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가 2004년 4월부터 원유 관세율은 3%에서 1%로 깎아준 반면 수입 석유제품 관세는 5%로 유지하면서 수입산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했다. 국제시장의 석유제품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 것도 수입 석유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정부는 이번에 수입 석유제품의 관세를 2%포인트 낮춰 수입산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면 장기적으로 수입산과 국산 사이에 경쟁이 촉발돼 국내 기름값도 떨어질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효과는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원유보다 훨씬 가파르게 올라 원유를 수입해다 정제해 파는 게 훨씬 가격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④ 고급 휘발유의 진실은 품질 기준 낮춰 일반이 고급으로 둔갑

일부 정유사가 옥탄가를 낮춰 고급 휘발유 판매를 부추기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일반 휘발유의 옥탄가를 낮추면 옥탄가 94 이상의 고급 휘발유와 품질 차이가 확연해져 고급 휘발유 판매가 늘어날 것이란 계산이다. 최근 고가의 수입차가 많이 팔리자 정유사마다 고급 휘발유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옥탄가 91 이상이면 차에 아무 문제는 없다"며 "그러나 옥탄가를 낮추고도 이를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은 게 문제"라고 말했다.

정경민.권혁주.윤창희 기자<jkmin@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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