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7가] 이치로의 바뀐 인생관과 박찬호의 결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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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는 참 행복한 선수입니다. 최근 뉴욕 메츠의 트리플A 팀에서 방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기저기서 앞날을 걱정하고 거취에 대한 조언이 답지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명예롭게 은퇴하라' '지금이야말로 돌아와서 한국 야구에 기여할 수 있는 적기다' '복귀한다면 선수가 아닌 지도자가 바람직하다' 등등. 팬들은 물론 한국 야구의 선후배들까지 하나같이 그를 아끼는 마음에서 충언을 전했습니다. 와중에 처가가 있는 일본 진출설이 대두돼 부랴부랴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 진출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하는 해프닝도 벌어졌습니다.

이번 방출은 박찬호 스스로 요청한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시즌 개막 직전 방출이 결정됐을 때 메츠에서 "우리팀 선발 투수들이 아직 젊어서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깐 당분간 트리플A에 머물러 달라"고 했답니다. 메츠 선발진도 안정되고 부상 선수들도 속속 복귀하거나 예정돼 박찬호는 떠날 시기를 잡았고 구단도 흔쾌히 풀어준 것입니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된 박찬호에게 남은 일은 하루 빨리 새 둥지를 찾는 일입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선수에게 그라운드는 물고기의 물과 같은 것이니까요.

박찬호는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이뤄야 할 꿈이 있고 아직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조언한 선택지 중 메이저리그 잔류의 뜻을 분명히 밝힌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메이저리그서 박찬호가 새 둥지를 찾는 문제는 그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를 원하는 구단이 있어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냉혹한 현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갖고 제안한 여러 갈래의 길은 그래서 여전히 유효합니다. 심지어 스스로 논외라고 일축한 일본 진출까지도 포함됩니다.

메이저리그에 남느냐 아니냐로 끝날 게 아닙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결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의 혹독함입니다. 곧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련도 깨끗이 버리고 현실의 칼날 위에서 주체적으로 냉정하게 자신을 향해 천착해 들어가 결단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새 팀을 찾는 것만큼이나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가장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온갖 축복의 세례를 다 받아온 '상징적 인물' 박찬호이기에 결코 피할 수 없는 몫입니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이치로 스즈키는 얼마 전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상 어떻게 하면 팬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가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신 발견한 게 정말 내게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면 좋고. 그러면서 더욱 자신감이 생기고 남을 의식하는 이치로가 아닌 진정한 나의 분신인 이치로가 됐다. 사람들은 주목받으면서 마네킹이 된다. 자기 자신이 아닌 '짝퉁의 나'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먼저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는 그 이유도 밝혔습니다. "종종 미국 사람들은 실제보다 자기 자신을 더 크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미국과 일본 문화의 큰 차이다."

이치로의 말처럼 '짝퉁 박찬호'가 아닌 '분신 박찬호'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구자겸 USA중앙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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