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회장이 「해야할 일」/노재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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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의 대선출마설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많은 국민을 착잡한 심정에 젖게 했다. 항간에는 이미 『이제 「삼성당」만 남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고 있다. 힘있다고,돈많다고 너도나도 「대한민국 대통령」일까. 김 회장은 지난 주말 사이에 『만약 정치에 참여하더라도 대권에 도전하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다. 또 『신당으로부터 대통령후보 영입에 관한 공식적인 제의나 교섭을 받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25일 아침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새한국당의 이종찬의원을 비공식적으로 살짝 만났음이 드러났다. 정치방면에 관한한 가진 것이라고는 「소중한 한표」밖에 없는 민초들로서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소문대로 차기를 대비하는 사전포석인지,아니면 출마를 염두에 두고 여론을 떠보다가 불리하다는 판단이 들면 『없던 일로 해주세요』라고 말할 참인지 짐작할 길이 없다.
재벌이 산업현장과 수출전선을 떠나 정치일선에 나서는 것은 우리 실정에서 국민적 동의를 받기 어렵다. 구태의연한 수분론때문이 아니다. 대기업을 해 번 돈으로 정치를 한다는데,그 돈엔 공개념이 전혀 없는 것인가. 모르긴 해도 대기업의 기업력과 재산은 국민의 힘이 뒷받침되었다는 것이 국민정서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한다.
재계에서 쌓은 경험과 지도력을 바탕으로 정치일선에서 국민에개 봉사하는 것은 좋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탈바꿈에 따른 납득할만한 동기와 절차가 필요하다.
김 회장의 정계입문설에 따른 당장의 대우계열사 주식폭락사태는 접어두고라도,대우의 22개 계열사중 상당한 흑자를 내는 곳은 불과 3개사정도라는 점도 지적돼야 한다. 대우자동차의 경우 지난해 적자가 무려 1천6백억원이라 한다.
역대정권의 개발우선정책이 보호막이 되어 성장한 대기업경영인이 발등의 불을 외면한 채 「대권도전」을 외친다면 국민의 세금으로 휴전선을 지키던 군인들이 어느날 갑자기 서울시내로 입성하는 행태와 과연 얼마나 다를까. 아무래도 앞뒤와 경중이 뒤바뀌었다는 느낌이다. 양보해 생각하더라도 오키스트라의 바이얼린연주자가 화음에 불만을 품고 대뜸 지휘봉을 잡겠다고 나서는 꼴이다.
넓은 세상에 아무리 「할 일은 많다」지만 그 속에서도 해야할 일과 아니할 일은 있는 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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