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거짓과 부정 모르죠"|승마협회 수의 이사|조준행 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수의사 조준행(조준행·60)씨는「말 박사」로 통한다.
서울 시내 한복판 통의동에서 청운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조씨가 주로 치료하는 동물은 애완견이 대부분.
그러나 승마경기가 있는 날이면 병원 문을 닫아걸고 30년 동안 빠짐없이 나라나는 단골손님이기 때문에 승마인들 사이에선 회장보다도 더 유명한 인물이다
조씨가 대한승마협회에서 맡고 있는 직함은 수의(수의) 이사.
승마는 선수·말이 함께 출전하는 유일한 경기이기 때문에 다른 경기단체에는 없는 승마협회에만 있는 직책이다.
이밖에도 조씨의 명함에는 한국학생마술(마술)연맹 감사, 한국 임상수의학회 부회장 등의 직함이 함께 아로 새져져 있어 말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대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국립중앙방역연구소에서 근무하다 57년 개업의의 길로 들어선 조 씨는 지난 63년 중앙대의원으로 승마협회와 인연을 맺은 후 지금까지 줄곧 무보수로 승마협회를 위해 봉사해오고 있다.
조씨의 주임무는 경기가 열리는 날 새벽 말의 상태를 미리 파악, 이상유무에 따라 출전여부를 결정하는 것.
전염병이 있거나 부상중인 말은 선수들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마체(마체)검사는 필수적이고 수의사의 한마디에 따라 출전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선수·임원들은 조씨를 만나면 항상 깍듯이 인사한다.
경기 당일 조씨는 다른 임원들보다 2시간이나 일찍 마사(마사)로 나가 말의 상태를 점검한다. 경력 30년의 베테랑 조씨는 대회 때마다 1백여 마리의 많은 말을 관찰하면서도 이상이 있는 말은 어김없이 족집게처럼 가려낸다,
일직선으로 걷지 못하거나 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는 말, 발굽소리가 일정하지 않은 말은 일단 요주의대상이 된다.
의심이 가는 말은 일단 눈으로 검진한 다음 정밀검사를 위해서 청진기·혀 겸자(겸자)를 이용, 체온·맥박을 측정해 최종판단을 내린다.
경기직전의 마체 검사뿐만 아니라 대회기간 중 발생하는 말들의 응급처치도 그의 몫이다..
대구 전국체전이 열린 지난 13일 새벽에도 이종형(이종형·상무) 선수의 애마「베스파」가 배앓이 증세를 보인다는 연락을 받고 왕진, 1시간에 걸쳐 주사를 놓는 등 마치 자식을 치료하듯 극진히 보살핀 끝에 무사히 경기에 출전시켰다.
의학박사로 58년부터 60년까지 제5대 대한승마협회장을 역임한 선친 조병학(조병학·86년 작고) 씨의 권유로 경복 중 1년 때 승마에 입문, 3년 동안 선수생활을 한바 있는 조씨는 지금도 매주 한번씩 뚝섬에 나가 말을 탄다.
『수영 못지 않게 전신운동이 되기 때문에 승마를 하게 되면 잔병이란 근처에도 얼씬하지 못하게 돼요. 또한 말을 타면 온갖 잡스런 생각이 사라져 정신건강에도 더없이 좋아요.』
승마예찬론을 펴는 조씨는 보다 완전한 치료를 위해서는 말을 탈줄 아는 수의사가 검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뒤를 따르는 후배가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도 자신은 체력이 닿는 한 승마경기 때마나 꼭 참가할 것이라며 의욕을 보이고 있는데 앞으로도 10년은 문제없다고.
치료한 말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때면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기뻐하는 조씨는『말은 주인의 사랑을 잊지 않는 의리 있고 영리한 동물』이라고 말한다.
조씨는 최근의 경마 부정사건과 관련해『말은 거짓과 부정을 모릅니다. 단지사람들이 벌인 추악한 단면일 뿐입니다』라며 일부 몰지각한 경마 꾼 들을 질책했다.
슬하의 2남 2녀는 모두 결혼해 따로 나가 살고 지금은 부인 이정호(이정호·56)씨와 단둘이 살면서 하루 10여 마리의 동물환자(?) 들을 돌보고 있다.

<김상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