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조류독감 겁낼 필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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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구제역.돼지콜레라에 요즘은 조류독감까지 유행함에 따라 닭도 식탁에 올리기 두렵다고 한다. 철석같이 믿던 미국의 쇠고기도 광우병의 위험이 있단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먹거리 하나 제대로 된 것 없으니 우리의 식품위생 환경이 왜 이 모양이냐 하는 탄식과 함께 조류독감의 확산을 막지 못한 방역당국을 질타하기도 한다.

조류독감은 사람에게 유행성 독감이 있듯 늘 자연계에 존재해 왔다. 단지 올해는 맹독성이 강한 유형의 바이러스가 우리를 급습한 것일 뿐이다.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는 양계농가를 비롯한 우리 축산농업에 대한 그동안의 무관심이다. 국내 양계업은 대부분 영세하다. 따라서 농가에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조밀한 사육장에서 닭들을 키우게 마련이다. 게다가 닭에서 배설되는 분변 처리라든가 음용수 관리 등 위생관리가 제대로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양계업을 하는 분들의 위기관리가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조류독감처럼 빠르게 번지는 전염병은 조기 발견과 빠른 신고가 초기 진압의 관건임에도 그러질 못했다.

둘째는 시민들의 반응이다. 조류독감 뉴스가 나오자 닭고기 수요는 더욱 격감해 가뜩이나 피해를 본 양계 농가에 더욱 치명타를 주고 있다. 하지만 조류독감으로 죽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은 그보다 몇 천 배나 된다. 보신을 위해서라면 비위생적인 뱀을 잡아먹고 살아 있는 곰 쓸개에 관을 꽂아 즙을 마시는 사람들이 끓여 먹으면 전혀 해가 되지 않는 닭과 오리고기를 기피하는 것은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조류독감이 사람에게 감염될 확률은 거의 없다. 조류와 사람에게 나타나는 바이러스가 유전자 교환에 의해 새로운 유전자형의 독감을 발생시킨다고는 하지만 이는 자주 있는 현상이 아니다. 실제 조류에게 맹독성을 미치는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고, 사람에게 치명적인 독감은 조류에게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번 사태는 단지 조류에서 발견되는 현상일 뿐이며,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 자연의 섭리로 이해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언론 역시 이러한 맹목적인 우리들의 두려움을 부추기고 있다. 사태의 본질과 근본적인 해결책을 보여줘야 할 매체에서 마치 전쟁터의 전황을 보고하듯 양계장의 처참한 화면을 속속들이 전달하는 것은 대중의 불안만을 부추길 뿐이다.

행정당국은 좀더 의연해야 했다. 관계 장관까지 등장해 오리 고기를 먹고 있는 모습은 오히려 초라하게만 비친다. 이런 연출된 행동은 상황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양(飼養)농가에 대한 관심과 배려다. 이들 농가를 규모화하고 과학화하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조류독감 사태는 재현될 것이다. 또 이들에게 조류독감과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교육하고, 신고하는 시스템도 차제에 확립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사양농가의 손해를 걱정해 신고가 늦어진다면 조기발견.신고시 장려금을 주는 방법도 고려해봄직하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밤낮으로 노력하는 대다수의 방역 담당자를 질타하기보다 자연 앞에서 겸허하게 최선을 다하라는 격려의 말이다. 방역체계가 좋다는 유럽에서도 광우병을 포함해 많은 유행병이 발생하고 퍼져나간다. 그것은 자연 앞에서 우리 과학 지식의 한계를 보여준다. 광우병도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소에게 양의 내장을 먹임으로써 자연계의 생태적 안정을 인위적으로 교란한 것이 유력한 원인이다. 그것은 생산성 추구라는 인간의 탐욕으로 빚어낸 자업자득의 당연한 결과다.

미생물 하나 안다고, 또 유전자 한 두 개 조작할 수 있다고 자연이 우리 손에 의해 통제될 것이라는 어리석음은 버려야 한다. 생태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탐욕을 절제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겸허한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탐욕과 오만으로 계속 자연을 대한다면 자연은 앞으로 이보다 더욱 처참하고 치명적인 무기로 우리에게 대항할 것이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수의 면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