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해체론」 알맹이 있나/정주영­김우중회장 잇단 발언 주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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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세경영­집단체제가 속셈/“재벌 「정치월경」입막기” 눈총
『몇년뒤에는 현대그룹이 해체되게 하겠다.』
『95년이면 대우의 각 계열사들은 독립적인 전문경영체제로 바뀌어 사실상 대우그룹이 해체될 것이다.』
정치에 뛰어들기 직전인 지난해 12월 정주영씨가 한 말과 곧 정치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보이는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이 25일 모방송사와의 대담에서 한 말은 너무나 비슷하다.
두 총수의 재벌해체론이 과연 알맹이가 있는 것이며 특히 대우그룹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가 재계의 큰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본래 의미의 재벌「해체」는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과 상호출자를 통한 의존관계를 없애고 ▲그룹 소유에서의 1인지배를 벗어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말하는 그룹 해체는 이와는 좀 맥락이 달라 2세들에 의한 분할경영체제이거나 과도기적인 전문경영체제가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즉 『재벌이 정치까지 하려 하느냐』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분칠이 아니냐는 것이다.
전경련의 한 고위간부도 『그룹총수출신이 재벌해체를 말하는 것은 정치적인 제스처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그룹 소유권을 2세에게 넘기는 것은 부뿐 아니라 기득권 등 많은 것을 인도하는 것이어서 재벌 스스로 재벌을 해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두 총수는 이미 뱉은 말을 어느 정도는 실현시켜야 하기 때문에 두 그룹은 큰 구조변화를 겪게 될 전망이다.
우선 대우의 경우를 보면 김 회장이 어느 정도의 사전정지 작업을 해놓았다. 올해초 김 회장은 그룹운영위원제를 도입,자신은 대우자동차와 전자만을 친정하고 김준성 (주)대우회장 등 13명의 운영위원에게 나머지 20개 계열사를 2∼3개씩 분리경영케 하며 인사권까지 주었다.
따라서 김 회장이 말하는 해체는 그룹 원로 등 전문경영인으로 느슨한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며 계열사별 독립경영체제로 가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김 회장의 2세들이 모두 20대여서 당장은 물려주기가 어려우므로 10여년 이런 식의 과도체제로 가다가 결국 2세에게 넘겨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만 김 회장이 법률적으로 갖고 있는 주식은 대우조선의 2백만주(18%)뿐이어서 비교적 그룹과의 「결별」이 쉬운 입장이라는 특징이 있다. 김 회장은 78년과 80년 갖고 있던 주식과 현금 모두(당시 2백50억원어치)를 대우 문화재단에 출연,법률적으로 그룹에 대한 소유권이 없는 셈이다.
이 재단은 (주)대우 등 주요 4개사의 주식을 1.2∼11.8% 갖고 있어 간접적으로 김 회장의 영향력이 있고 김 회장은 상호출자 등 형식으로 계열사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김 회장은 경우에 따라 회장직책도 포기할 전망이나 어느 정도 실질적인 그룹해체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정주영씨가 말한 현대그룹 해체역시 뚜렷한 진전이 아직 없는 상태다.
42개의 계열사중 16개에 아들 6명이 경영에 관여하고 있으면서 2세와 동생(정세영 그룹회장)에 의한 소그룹 분할경영으로 가고 있을 뿐 계열사간 지급보증을 끊는 등의 가시적 조치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앞으로 3년간에 걸쳐 30대그룹의 계열사 지급보증 규모를 자기자본의 2백%이내로 규제하려하자 전경련이 위헌소송을 검토하는 등 반발하는데서 볼 수 있듯이 재벌의 「해체」는 가야할 길이 멀다는 느낌이다.<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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