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고시 수석합격 원희용씨(사람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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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공단생활 등 경험한 서울대 운동권 출신/8년만에 졸업… 82년도 대입고사도 수석
『전혀 예상치 못한 수석이라서…. 그동안 못난 자식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셨던 제주도의 부모님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23일 34회 사법고시 수석합격 소식을 전해들은 원희용씨(28·광명시 하안1동)의 11평 자취방에는 벌써 소식이 전해진듯 축하전화벨소리가 잇따라 울렸다.
제주도 서귀포 출신으로 89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원씨는 90년말부터 1년6개월여의 짧은 수험준비 끝에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사시에 1등 합격했다.
원씨는 제주 제일고를 졸업,82학년도 대입학력고사에서 3백32점으로 전국 수석자리를 차지하기도한 수재.
국민학교 입학후 고교졸업 때까지 단 한번도 1등자리를 넘겨준 적이 없었다는 원씨는 그러나 대학입학후 책만 보는 창백한 지식인이 되기를 거부했다. 학생운동에 투신,정학 1회·휴학 3회의 화려한(?) 전력을 쌓으며 경찰서를 수시로 드나드는 「투사」로 변신했다.
83년부터 서울대 지하운동서클인 「법인사회과학 연구모임」에 참가한 것을 시발로 89년 졸업때까지 결국 남들보다 두배 긴 대학생활을 했다. 시위현장과 인천공단 등 노동현장에서 사회변혁을 위해 치열한 몸부림을 쳤다는 그는 『그런 무대에서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느끼고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다른 길로 고시를 택했다』고 했다. 법조인이 되겠다고 마음을 굳힌 이후 원씨는 오전 7시30분이면 어김없이 대학 도서관에 도착해 10시간씩 집중적인 공부를 했다고 말한다.
『2남4녀를 뒷바라지 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감귤농사 수입에도 불구,매달 20만원씩의 용돈을 부쳐주신 부모님의 정성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 힘이 되었죠.』 베토벤의 남성적인 음악과 등산을 즐긴다는 원씨는 『전문화 추세에 맞춰 국제변호사나 노동변호사 등 전문적 지식과 소양을 갖춘 법조인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제주도에서 감귤농사를 하는 아버지 원응두씨(58)와 어머니 김춘생씨(58) 사이의 2남4녀중 차남인 원씨는 내년 1월20일께 「사생활 침해혐의로 고소될까봐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여의사(26)와 백년가약을 맺을 예정이다.<하철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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