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쇠고기에 대한 두 가지 잣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호 27면

시장 개방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한편으론 개방의 혜택을 누리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개방에 대해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개방의 대상이 농산물인 경우는 그 반응이 거의 극단적으로 교차한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문제는 시장 개방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농림수산부 관리나 국회의원들 중에 대놓고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오자고 앞장설 만큼 강심장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자고 하면 왠지 국내 축산농가들에 죄를 짓는 것 같고, 심하면 매국노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막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자 수입업자들이 줄을 섰다. 수입물량이 워낙 적다 보니 미국에 가서 입도선매로 물량을 잡으려고 난리다. 미국 축산업자들의 개방 압력도 있겠지만,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내 수요의 인력(引力)도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겉으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거부감을 보이면서, 실제로는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이런 이중성은 시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시장에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있다. 국내 쇠고기 시장에도 쇠고기를 생산해서 파는 사람과 이를 사먹는 소비자가 시장을 형성한다. 시장이 개방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급자는 국내 축산농가뿐이다. 그런데 시장이 개방되면 외국의 축산업자가 공급자편에 가세한다. 똑같은 소비자를 상대로 더 많은 공급자가 경쟁을 벌이면 값은 떨어지게 돼 있다. 소비자는 더 나은 품질의 쇠고기를 더 싼 값에 먹을 수 있으니 당연히 이득이다. 소비자가 시장 개방에 찬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면에 국내 축산농가는 시장 개방에 반대해야 마땅하다. 개방으로 갑자기 유력한 경쟁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닫힌 시장에서 누리던 독과점의 이익이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착시현상이 생긴다. 시장을 구성하는 두 축인 생산자와 소비자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뭉뚱그려 시장을 개방한다고 하니, 생산자와 소비자의 입장이 뒤엉켜 혼란스러워진다. 여기에 시장의 본질과 아무 관계없는 애국심이 가세하고, ‘농촌을 살리자’는 감성적 호소가 덧붙여지면 소비자 단체가 개방을 반대하는 이상한 일도 벌어진다.

수입 개방 여부를 순전히 경제논리로만 따지면, 개방으로 늘어나는 소비자의 이익이 생산자들의 이익 감소(손실이 아니다)보다 크면 개방하는 것이 국민경제적으로 이득이다. 소비자의 이익도 국익인 것이다. 그동안 쇠고기 시장은 개방으로 얻는 소비자의 이익이 훨씬 큰 데도 오로지 생산자의 목소리만 크게 들렸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조용히 지갑으로 말한다. 소비자는 어떤 물건이든 질에 비해 값이 싸면 두말 없이 지갑을 연다. 미국산 쇠고기의 제한적인 수입 재개 이후 나타난 폭발적인 수요는 소비자들의 말없는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의 본격적인 수입을 앞두고 국내 한우값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개방 덕에 질 좋은 한우 고기도 비교적 저렴한 값에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일반적인 거부감은 여전한 것 같다. 미국 국내용보다 훨씬 엄격한 위생기준에 맞춰 들여오는데도 수입 쇠고기에 대해 이런저런 시비가 많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국내 소비자가 미국 소비자보다 더 안전하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