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소기업하기가 이렇게 고단하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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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본지 기자가 일주일 간의 체험을 통해 보도한 중소(中小)기업 사장 동행 취재기(본지 12월 24일자 1면)는 한국 중소 제조업체가 겪는 고통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기업할 수 있게만 해줬으면 좋겠다"는 한 중소기업 사장의 절규는 하소연으로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나 절박하다.

제도가 바뀌는 바람에 수천만원을 들여 만든 소각로는 폐기처분하고, 3D현상 때문에 모자라는 일손을 외국인 근로자로 메우려 해도 법에 걸려 안 되고, 공장 지으려고 허가받아 땅 사놓고도 '공장총량제'때문에 못 짓고….

굳이 이번 사례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기업인, 특히 중소 제조업체의 고통과 좌절은 극한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금난, 판로 애로, 인력난, 낙후된 금융관행, 노사분규에다 일선 공무원의 보신주의. 여기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규.제도는 중소기업인의 숨통을 옥죈다. "자식에게는 절대 안 물려준다"란 말이 이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약 2백90만개로 전체 사업체의 99.8%, 종사자는 9백97만명으로 85.6%를 차지하고 있다. 수출 비중도 45%에 이를 정도로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정책 당국자의 관심권 밖으로 방치된 지 오래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정치권이 경제를 외면하면서 중소기업은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다. 부도가 잇따르고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중소기업의 65%가 해외로 이전했거나 추진 중일 정도라 이대로 가면 제조업 공동화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중소기업, 특히 제조업의 기반 없이는 일자리 창출도, 경기 회복도,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도 불가능하다.

특히 현장과 맞부딪치는 일선 공무원이 현장의 어려움을 가장 잘 알면서도 중소기업인들의 발목을 잡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중앙정부나 국회의원들은 기업인들의 절규를 귀담아 듣고 현실과 동떨어진 법규와 제도.규제를 과감히 뜯어고쳐야 한다. 중소기업인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한국은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