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용산기지 활용 접점 없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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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울 용산에는 우리나라 안보에 없어서는 안 될 2대 지주가 있다. 우리의 국방을 총괄하는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하나요, 유사시 국제연합군과 한.미연합군을 합쳐 작전 통제하는 유엔사 및 한.미연합군 사령부가 또 하나다. 이 두 지주가 지난 반세기에 걸쳐 북한의 격렬하고도 집요한 각종 도발을 좌절시켜 왔기에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고 오늘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용산기지의 복판에 우리 식으로 기와를 올려 우리가 지은 건물에는 한글과 영문으로 유엔사 및 한.미연합군 사령부라는 현판이 있다. 현관에 들어서면 한.미 양국의 대통령, 그리고 한.미 양측의 사령관과 부사령관 사진이 크게 걸려 있어 이 사령부의 지휘체계를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유엔군 사령부는 53년 전 북한군과 중공 의용군이 불법 남침해 왔을 때 유엔이 결의해 우리나라의 자유와 독립을 지켜주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또다시 이 땅에서 정전체제가 무너진다면 증파해 올 국제연합군을 총지휘할 것이다. 현재 이 사령부에 전임으로 보직된 인원은 소수이며 대부분 한.미연합사 참모들이 겸직하고 있다.

한.미연합군 사령부는 한.미상호방위 조약에 따라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창건됐다. 그 기능과 조직은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 사령부와 흡사하다. 사령관은 미국의 4성 장군이지만 부사령관인 한국군의 4성 장군이 지상전을 책임진다. 증파되는 미군 지상군 부대를 포함해 작전을 지시하는 등 참모들도 직책의 상하와 부서를 양국이 균형있게 분담하고 있으며, 계급과 인원수도 상응하고 있다. 우리 측 참모와 부사령관을 거치지 않고 사령관에 바로 보고되는 안건은 없고 우리 부대에는 우리 말로만 지시가 하달된다. 이와 같이 유엔사와 한.미연합군 사령부의 두 사령부는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적극 참여로 우리가 운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상호방위 조약은 우리가 외침을 당할 경우 미군의 자동 개입을 보장하지 않는다. 미국의 헌법 절차에 따라 미 의회의 승인을 얻어 미군이 참전하는 것으로 돼 있다. 미 대통령의 자위적 병력 사용권은 자국군이 공격받거나 한.미연합사가 직접 공격당할 때만 발동된다. 서울은 북한 포병의 사정권 내에 있고, 유사시 판문점으로부터 4~6차로로 뚫린 도로망 때문에 1~2시간이면 북한군이 한강까지 도착할 수 있다. 이런 지형적 위치로 만약 미군이 한강 이남으로 철수한다면 미국 의회의 동의를 거쳐 미군이 적극적으로 참전하기까지 엄청난 시차가 있으며 그에 따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수도 서울은 한국전쟁 때와 달리 사수돼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적에게 미 증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서울을 강점해 유리하게 종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오판을 허용할 수 없다.

국가의 통수 정책기구와 전쟁을 수행하는 사령부는 가깝게 위치해 긴밀하게 협의, 연락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령부는 방어해야 할 총 인구의 절반, 국부의 8할과 함께 서울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우리의 방어전략은 전쟁의 억지와 예방이니, 확고부동한 한.미동맹의 가시화는 양국의 국가 이익에도 일치하는 전략이다.

현재 용산기지를 활용하는 데 한.미 간의 이견이 있는 것은 양국의 병영 운영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군인들에게 영내에 관사를 비롯한 자녀의 교육.의료 등 복지 시설을 완비해줌으로써 그들의 국가에 대한 봉사에 보답한다. 그러나 우리의 군은 그렇지 못하다. 이동하는 미 8군의 자리에 국방부가 한.미연합사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종합운동장을 포함한 체련단련시설을 건설하면 어떨까. 연합사에 근무하는 미국 장병들도 함께 사용하게 함으로써 우리 군의 사기 진작과 함께 평소부터 동맹의 전우애를 돈독히 하고, 잔류 미군의 소요용지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 우리도 더 많은 실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당면 국방 목표가 전쟁의 억지에 있음을 감안할 때, 영국의 대정치가 처칠 총리가 말한 "동맹국이 없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동맹국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란 경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류병현 전 합참의장.전 주미한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