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3부] 가을(7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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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림=김태헌

둥빈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다만 언제나 적던 말수가 더 적어졌을 뿐이었다. 엄마가 학교에서 돌아온 둥빈을 붙들고 "저어기…, 내일 갈까?" 하고 물으면 둥빈은 언제나처럼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조금만 더 생각해보고 싶어"하고 말았다.

그렇게 일주일쯤 흘렀다. 엄마는 내내 둥빈의 눈치를 보고 있었고 둥빈은 컴퓨터 게임에 더욱 몰두해갔다. 내가 이런 소식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나 같으면 바로 아빠에게 달려갔을 것이었다. 날마다 울며불며 믿지 않는 신에게 매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둥빈은 컴퓨터 게임 속에서 총만 쏘고 있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것이 한 번 더 느껴졌다. 내가 사랑하는 동생이 게임을 하고 있다고 그 아이의 슬픔이 덜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 언제나 게임을 하는 시간이 길다고 잔소리를 해대던 엄마도 둥빈의 눈치를 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주말이 되었다. 학교에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침 일찍부터 검은 정장을 차려 입은 엄마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위녕…, 엄마 지금 대전으로 강연 가."

별 생각 없이 응, 하고 대답하려는데 엄마가 내 침대에 무너지듯 앉았다.

"둥빈 아빠…. 방금 전에…… 운명했대."

머리를 빗다 말고 내가 엄마를 돌아보았다. 엄마는 입술을 앙다문 채로 내 침대 가장자리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한결 차가워진 아침 바람이 열려진 창을 통해 밀려들어왔다. 벗은 내 팔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렇게… 빨리?"

"목이 이상해서 병원에 검진 받으러 간 지 한 달 만이래…. 젊으니까… 오늘 엄마 강연 빼고 다른 일정은 다 취소했어. 노는 토요일이라 지금 동생들은 자고 있어. 깨워서 말을 하기가 뭣해서 말을 못했어…. 위녕 오늘 저녁에… 너희 학원이고 약속이고 다 취소해. 엄마 일찍 올게. 둥빈이 물으면…, 그러면……."

엄마는 무언가가 복받치는 듯 다시 한번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러고는 잠시 후 큰 숨을 한번 쉬고 나서 말했다.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 대답해도 좋아."

엄마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지만, 얼굴은 잿빛이었다. 엄마는 아마 또 사형제 페지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강연을 할 것이었다. 둥빈 아빠에게 매를 맞고 나서 페미니즘 강연을 가야 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엄마는 이제, 둥빈 아빠가 죽은 아침, 생명에 대해 강연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죽음이 사형이라고 말할 때, 엄마는 어떤 심정일까. 머릿속으로 오늘 저녁 쪼유와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 것이 생각났지만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방을 나가려다 말고 방 한구석에 몸을 말고 앉은 라떼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엔젤 병원 아저씨한테 말해서, 주인 없는 아기 고양이 있으면, 한 마리 더 데리고 와. 라떼도 외로울 거 아니겠니…. 대신, 건강검진 좀 미리 해달라고 해. 절대로 죽지 않는 고양이로…."

나는 엄마가 나가버린 방에서 라떼를 안아 들었다. 절대로 죽지 않는 고양이….

그날 저녁, 엄마는 우리들에게 검은 옷을 입으라고 했다. 그리고 모두 함께 성당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평소에는 우리에게 성당에 가야 한다고 강요하는 일이 없었는데 엄마의 얼굴은 단호했고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다.

"오늘 둥빈 아빠가 돌아가셨어. 둥빈… 너는 오늘 날짜를 기억해라. 앞으로 네가 지켜야 할 기일은 그러니까 어제 날짜가 되는 거야. 알겠니?"

둥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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