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비서실/긴장의 나날… 많은 경험도(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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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일거수일투족 챙기는 “분신”/“보름치 의전일정을 꿰뚫어야”/고급정보 접할 기회 등 장점도
선거중립내각 구성을 위한 개각이 있었던 9일 하룻동안 감정기복이 가장 심했던 공무원은 장관이 교체된 부처의 장관비서실 직원들이었을 것이다.
불과 수십분의 간격을 두고 상반된 분위기로 교차된 신·구관의 진퇴를 바라보면서 비서실직원들은 스스로 다스릴 수 없는 감정을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이날 새 장관을 맞아들인 한 비서관은 『그동안 모셔온 장관이 정치적인 이유로 갑작스레 떠나는 것을 보니 공연스레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거웠다』며 『잠시후 또 다른 분위기로 신임장관을 모시려니 내가 연극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장관에 직속돼 장관의 분신처럼 업무를 보좌하는 비서실.
장관비서실의 기능은 부처의 고유행정 대신 자연인으로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장관의 업무수행을 지원하는 것이다. 인원구성은 서기관(4급)인 실장밑에 사무관(5급)인 수행비서,서류업무를 담당하는 행정비서(6급 주사),기능직 여비서 등 4∼5명으로 되어 있다. 직제상 비서실장자리는 과거에는 별정직으로 정해져 장관이 자기사람을 데려다 쓸 수 있었으나 5공때 업무부서와의 조율기능이 강조돼 부처의 과장급 일반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도 재량껏 비서실장을 데리고 다니는 장관들이 있으며 특히 수행비서와 별정직인 여비서의 경우는 관례화돼있다.
수행비서나 여비서는 장관의 기분까지도 미리 챙길줄 알아야 하는 옷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연택노동장관은 6월 총무처에서 노동부로 장관직을 옮기면서 수행비서와 여비서 2명을 데려갔다.
또 환경처 장관비서실장 노윤표서기관은 별정직으로 이재창장관이 인천시장으로 있던 88년부터 환경청·교통부·경기도 등으로 함께 옮겨 다녔다. 그러나 내무부나 교육부 등은 부처소속의 일반직원으로 비서진이 구성돼 있다.
장관비서의 어려움은 역시 치밀해야 하는 업무수행,원만한 대인관계유지의 부담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은 것이라고 비서들은 입을 모은다.
『의전일정을 확인하는 일이 스트레스의 주범입니다. 최소한 보름분 70개정도의 장관일정은 시간·장소를 꿰뚫고 있어야 하죠. 늘 마음 졸이며 행사전까지 4∼5번씩은 확인해야 실수가 없습니다. 복장·참석인사 등 미리 챙겨야할 사항도 한두가지가 아니죠.』 노동부의 장관 수행비서인 김용훈사무관의 말.
내무부 차주영비서실장은 장관과 아예 바이오(생체)리듬을 맞춰야 하는 긴장과 사생활도 포기하다시피해야 하는 근무로 5월 비서실로 들어간 이후 몸무게가 4㎏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근무조건에다 정통행정에서 벗어난 「외도」라는 인식때문에 비서실은 썩 인기있는 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장관의 측근참모로서 폭넓은 대인관계에다 고급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고 다음 인사때 보직우대를 받는 장점도 있어 성격과 기질에 따라서는 선호하는 사람들도 적지않다. 과거에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기도 해 전설처럼 전해져오는 에피소드도 많다.
5공때 보사부 모비서관은 국회·권력기관 등의 청탁을 핑계삼아 국·실장들의 업무에 사사건건 간섭해 욕먹을 정도였으며 김정수장관때까지만 해도 장관비서관은 「대감」이라는 칭호가 붙었었다고 한다.
장관비서관 출신으로 뒤에 상당한 지위에 오른 사람들도 많다.
이봉학 전 대전시장과 김원석 현경남지사는 각각 홍성철씨와 김치열씨가 내무장관으로 있을때 비서실장을 지낸 사람들이다. 비서실은 고된 자리이기는 하지만 짧은 기간에 부처전체를 파악할 수 있고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적극적인 공무원들이 거쳐가는 자리다.<이덕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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