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 주춧돌 놓은 거목/타계한 브란트 독 전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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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동방정책 성공… 71년 노벨평화상 수상
빌리 브란트 전서독총리는 동·서독의 체제대립을 타파,독일통일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브란트는 지난 61년 서베를린 시장시절 베를린 장벽을 둘러싼 위기에 정면대응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뒤 64년 구서독 사민당(SPD) 총재에 취임,66년 기민당(CDU)과 연정때 부총리겸 외무장관을 맡았다.
69년 사민당이 총선에서 승리,총리에 오른 브란트는 이른바 「동방정책」을 추진한다. 동방정책은 동서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독일내에서 냉전을 종식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과감한 통일지향 정책.
2차대전이후 체제대립으로 맞서 온 동·서독은 동방정책을 계기로 정치·경제적 교류를 적극 추진하기 시작했고 동·서독 주민 왕래도 이루어졌다.
당시 서방국들은 브란트총리의 동유럽공산국들과의 화해정책이 공산국가들의 「철의 장막」을 승인하는 조치로 받아들여질 것을 우려했으나 브란트 총리는 과감히 화해정책을 밀고 나갔다.
브란트총리의 동방정책은 71년 그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한편 브란트총리는 이스라엘을 방문한 최초의 서독총리였으며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는 바르샤바 유대인 집단거주지 위령탑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에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도 해 용기와 품위를 갖춘 지도자로 존경받았다.
브란트총리는 지난 74년 자신의 보좌관 귄터 기욤이 동독의 스파이임이 밝혀져 총리직을 사임했으며 87년까지 사민당 총재로 재임했다.
브란트총리는 지난 1914년 뤼벡지방 헤르베르트프람지방에서 한 가게종업원과 교사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으며 16세 되던해 사민당에 가입했다.
히틀러가 집권했던 1933년 노르웨이로 이민해 한때 노르웨이국적도 가졌었다. 1940년 노르웨이 군인으로 포로가 됐었으나 스웨덴으로 탈출,그곳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했다.<강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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