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각/전문성보다 「중립」에 비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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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야 주장도 수용… 행정력 발휘가 과제/유 공보처­김 정무1 막판에 맞바꿔
10·9 개각의 기본은 노태우대통령의 중립선거관리 내각 정신에 따라 전문성 보다는 중립성이 존중됐다. 이 때문에 5,6공에서 각료를 지낸 사람은 철저히 배제됐다.
대신 국정의 지속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선거업무 관련 장관 외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안기부장을 경질한 것은 개각폭을 최소화 하면서 개각의 성격을 부각시키고 야당의 주장을 받아들임으로써 잡음을 없애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중립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전문성이 뒷전에 밀려 과연 임기 마무리를 할 수 있는 행정력이 발휘되겠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게 사실이다.
또 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무색 무취,불편부당을 쫓아 학계·재야·언론계에서 인선을 한데 대해 관료조직의 보이지 않는 반발도 있다.
○…노 대통령은 한때 이상연안기부장의 유임을 검토했으나 3월 총선시비의 핵심인 안기부장을 그대로 둘 경우 중립내각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는 민자당쪽의 의견에 따라 경질키로 결심했다.
이에 따라 안응모 전내무장관이 처음부터 적임자로 꼽혔다.
안기부장은 직무의 특수성 때문에 치안본부장과 안기부 1,2차장을 지낸 안씨 밖에 없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김대중 민주당 대표가 강력한 거부감을 피력한데다 안기부 내부에서의 반발이 거세 8일 밤 노 대통령과 현승종총리 등이 참석한 최종인선 모임에서 이현우대통령경호실장으로 낙착.
안기부의 반발은 『왜 우리가 매번 경찰·검찰 출신들의 지휘를 받아야 하느냐』는 것으로 이 점이 막판 교체의 결정적 이유이기도 했다는 후문.
이 신임부장 임명과 관련,김학준청와대 대변인은 『이 부장이 경호실장으로서 노 대통령의 9·18 결심의 참뜻을 알고 실천할 수 있다는 점과 육군 정보사령관을 지내는 등 전문지식과 경호실장 업무가 안기부장 임무와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 그러나 내막적으로는 노 대통령이 취임이래 함께 고생해온 이 실장에 대해 늘 부담을 느껴온 점이 크게 작용.
이밖에 대전 출신의 이 실장이 소리내지 않고 경호실장직을 수행해 왔으며 정치적으로도 무색이라는 점도 감안됐다.
○…내무·법무장관이 모두 재야 법조인에서 기용된 것은 중립의지의 과시를 위한 것.
노 대통령은 한때 내무장관은 최소한의 지방행정 경험이 요구된다는 주변의 진언에 따라 김창식 전내무차관 등 전직 시도 지사·내무차관 등을 검토했으나 중립성 시비를 없애야겠다는 점에서 아예 인연이 없는 재야 법조인 중에서 골랐다.
학계출신 내무장관은 너무 무리이며 현 총리가 학계출신인만큼 중립성 이미지 제고에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의견이었다.
노 대통령은 백광현신임 내무장관에 대한 검찰 내부의 좋은 평판과 충북 단양이라는 출신지역 등을 고려했고 현 총리도 백 장관의 기용에 선뜻 동의했다는 얘기.
한편 판사 출신의 법무장관 기용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으나 내무·법무를 모두 검찰 출신으로 하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법관 출신의 내무기용은 더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정우변호사로 확정.
이 신임 법무는 법원장·대법원판사·법원행정처장을 지내는 등 행정경험이 있고 검찰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것이 발탁요인.
법무에는 박승서·김홍수씨 등 전 현대한변협회장도 거론됐으나 법조계 인사들이 이 변호사를 적극 천거했다는 후문인데 이번 인선실무를 맡은 정해창비서실장·김중권정무수석·김유후사정수석이 법조계에 정통해 대상을 찾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는 것.
○…유혁인공보처장관과 김동익정무1장관은 최종 조정과정에서 맞바뀐 케이스.
청와대 참모진은 당초 3공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 국제교류재단이사장을 정무1장관에,중앙일보 대표이사를 역임한 김동익중앙일보 고문을 공보처장관으로 내정했으나 손주환 전장관과 김 고문이 같은 신문사 출신이라 8일 밤 극적으로 바뀌었다는 후문. 김 정무는 비록 언론계 출신이지만 정계에 발이 넓고 현실정치에 감각이 있다는 점이 평가됐다는 것이다.
유·김 두사람 모두 청와대 관계자의 입각종용에 난색을 표했으나 중립내각의 특성을 들어 이미지에 손상이 가지 않는 점을 설명하자 동의했다는 것이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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