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이후」포철 누가 맡나/창립공신 「5인체제」 경영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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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외풍」맞서 홀로서기 “발등의 불”
박태준포항제철회장이 사퇴를 선언함으로써 포철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68년 포항제철이 설립된 이후 「포철=박태준」이라는 등식이 성립돼 왔으나 이제는 「박태준이 없는 포철」을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포철측은 박 회장이 사표를 제출한후 5일 이사회를 열고 사퇴를 번의하지 않을 경우 전임원이 사표를 제출하기로 결의하는 등 박 회장의 사퇴를 만류하고 있으나 박 회장의 뜻이 완강해 결국 시간이 문제일뿐 사표를 수리하는 수준을 밟게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포철의 한 관계자는 『박 회장의 성격으로 보아 사퇴의사를 번복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하고 『6일에는 포철의 사무실에 출근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 회장이 끝내 포철을 떠날 경우 후임회장은 일단 황경노부회장 등 포철출신의 경영인이 자리를 물려받게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외부인사가 들어앉을 수도 있으나 창립 이후 낙하산 인사가 없는 포철의 전통으로 미뤄볼때 가능성이 희박하며 다만 안병화한국전력사장 등 포철 출신 경영인의 영입가능성은 없지 않다.
한때 정계의 실력자인 K씨가 포철회장직을 원한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흘러간 일이고 정부 내에서 조차 포철이 스스로 굴러가도록 정치권이나 정부의 인사개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상태다.
따라서 포철은 박 회장이 물러난 뒤에도 누가 회장을 승계하든간에 「5인방」으로 불리는 박태준인맥이 당분간 포철의 경영을 끌어갈 것으로 보인다.
5인방은 황 부회장과 정명식사장·박득표수석부사장·최주선거양상사(계열사) 사장·장경환사장대우 회장보좌역 등이다.
이중 황 부회장과 정 사장,박 부사장은 박 회장과 함께 공동대표 이사직을 맡고있다.
특히 황 부회장은 안병화사장,장·최 사장과 함께 대한중석에 있다가 포철 창립 때부터 몸을 담아온 창립공신이며 10여년간 삼성물산 부사장과 동부제강회장 등을 지내며 포철을 떠나 있었으나 90년초 박 회장이 정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대행체제로 들어섰다.
박 회장의 후임으로는 황 부회장이 유력하나 이들 5인방은 누구라도 포철의 회장직을 맡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중 누가 회장을 승계하더라도 포철의 경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지만 박 회장이 명예회장이나 고문직까지 고사,포철과의 인연을 완전히 뗀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포철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 바로 박 회장이 포철의 「울타리」로 남아있지 않고 손을 떼는 것인데 이는 결국 포철의 경영에도 다른 국영기업과 마찬가지로 외풍이 불어닥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회장의 정치적 입지와 관련,「다음 정권에 들어가도 박 회장이 계속 포철회장을 맡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 돌았을 정도이고 보면 박 회장의 사퇴에 따른 포철 경영진의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큰게 사실이다.
포철의 매출액이 1백억달러(93년 목표액)에 이르는 「재벌급」초거대기업인데다 관양 4기의 준공과 함께 전환기를 맞고 있고 철강전문가가 아니면 결정할 수 없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많아 논공행상식의 낙하산 인사로는 회사를 꾸려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 회장의 사표제출 이후 포철은 사퇴번의를 촉구하는 등 「박 회장에 대한 정서」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나 결국은 박 회장이 없이도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독자적인 경영체제를 준비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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