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홍보처 '기자실 통폐합' 밀어붙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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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정홍보처가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자실 통폐합을 강행하기 위한 홍보에 나섰다.

홍보처는 4일 이른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대국민 홍보 책자 10만 부를 제작.배포했다.

홍보처는 이날 오후에는 최근 1년간 언론보도 내용에 대한 정부의 대응 조치들을 모아 인터넷 사이트인 '국정브리핑'에 공개했다. 5일에는 기자실 통폐합 예산 55억원을 예비비로 충당하는 안건을 국무회의에 올릴 예정이다.

청와대가 앞에서 끌고 홍보처는 뒤에서 밀며 기자실 통폐합을 밀어붙이고 있다.

◆홍보 책자 무차별 배포=홍보처가 이날 배포한 '정부와 언론관계 더 투명해져야 합니다'는 제목의 8쪽짜리 홍보 책자는 통폐합으로 무엇이 달라지는지에 대한 정부 입장만 옮겨놨다. "정보 접근이 쉬워져 국민의 알 권리가 커진다" "취재 시스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진다" 등이다.

'쟁점 Q&A'에서는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각종 문제점에 대해 자문자답 형식으로 반박하는 글을 실어놓았다. '신(新) 언론통제'라는 지적에는 "그런 주장은 어불성설이며, 가능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기자실을 없애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일본 등 몇 개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선진국은 기자실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며 해외 기자실 운영 실태를 첨부했다.

홍보처는 10만 부 중 2만 부는 이날 아침 무료신문에 끼워 서울 시내에 일제히 뿌렸다. 또 8만 부는 전국 읍.면.동사무소 등 공공기관과 학계.언론계 등에 우편으로 발송했다. 여기에는 인쇄비 900만원, 배포비용 1900만원 등 모두 2800만원이 소요됐다.

◆예비비 투입 적정성 논란=정부는 5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기자실 통폐합 예산 55억원을 예비비로 충당하는 안건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광화문과 과천.대전 등 3곳에 합동브리핑센터를 설치하는 데 26억원, 전자브리핑시스템을 갖추는 데 29억원이 투입된다. 홍보처는 이번 주 중 예산처로부터 돈을 받아 사업공고를 낸 뒤 이달 말 시설 공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임주영 서울시립대 교수는 "예비비는 긴급 재난이나 천재지변 등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마련해 놓은 것"이라며 "기자실 문제가 천재지변은 아니지 않으냐. 여기에 55억원이나 쓰는 것은 예비비의 기본 취지와 전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최인욱 함께하는 시민행동 예산감시국장도 "정부가 기자실 통폐합 방안을 갑작스레 내놓은 뒤 예비비를 갖다 쓰겠다고 하는 것은 예비비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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