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대교 아치/자살소동 “상설무대”/월 1∼2건… 관심끌기에 목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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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극심한 교통체증 처벌강화 지적도
한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한강대교의 철제아치가 「자살하겠다」는 사람들의 소동무대가 돼 관할 용산경찰서가 곤욕을 치른다.
28일에도 교통사고를 당한 아내가 보상을 제대로 못받았다는 한희철씨(47·미장공·서울 성수동)가 출근시간대인 오전 8시쯤 「누구를 위한 법인가」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다리 아치위로 올라가 자살소동을 벌여 경찰관·구급차 등이 출동하고 일부 차선이 통제되는 등 극심한 교통혼잡을 빚었다.
한씨는 결국 무술경찰관들이 올라가 간신히 끌어내려졌지만 문제는 이같은 자살소동이 수시로 벌어진다는 것.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한달에 1∼2번꼴로 이런 소동이 난다.
한강에 세워진 10여개의 다리중 유독 한강대교에서 자살소동이 끊이지 않는 것은 다리위에 높이 10여m의 반원형 대형 철제아치들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 아치는 폭이 1m가 넘고 표면이 올록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올라갈 수 있다.
『아치 꼭대기에 올라가 소동을 벌이면 수㎞ 떨어진 곳에서도 쉽게 관측이 되고 경찰·고가사다리차 등이 출동,교통을 통제하면 극심한 차량정체가 빚어져 세상사람들에게 뭔가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용산경찰서 김용무형사과장의 말이다.
결국 한강대교 아치위에 올라가는 사람들의 목적은 진짜 자살이 아니고 단지 소동을 벌여 관심을 끌겠다는 것이며 금년에만도 10여명의 사람들이 자살소동을 벌였지만 정말로 아치아래 강물로 뛰어내린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6월18일 팬티차림으로 아치위에 올라가 산재보상을 요구한 황모씨(23·노동)의 경우 딱한 사정이 언론을 통해 알려져 독지가가 황씨의 잘린 손가락을 대신할 의수를 해주고 취직을 시켜주기도 했다.
소동을 벌인 사람들은 몇시간씩 극심한 교통혼잡이 빚어지고 경찰·고가소방차 등이 동원돼 「난리」를 친데 비하면 비교적 가벼운 처벌인 즉심에 넘겨져 벌금을 물거나 며칠간 구류를 살게돼 처벌이 너무 가볍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아치위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정신병자를 제외하곤 대부분 가난하고 못배운 사회 소회계층들로 『오죽 억울했으면 그랬겠느냐. 이들이 정상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할 통로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정상참작론도 있다.
이들에겐 한강대교가 현대판 신문고구실을 하는 셈이지만 서울의 극심한 교통난을 감안하면 다른 이웃들에 너무 많은 피해를 주는 한풀이 소동은 자제되고 다른 적절한 방법으로 대체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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