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못추는 불 프랑화/유럽통합 불신 반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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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독·불 시장개입 프랑화 방어에 한계/영·이 탈퇴로 금간 EMS 붕괴우려
유럽외환시장의 최근 혼란은 작게는 유럽통화제도(EMS),크게는 유럽통합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파운드화와 이탈리아 리라화의 유럽환율조정장치(ERM) 탈퇴로 절정을 이루었던 유럽 외환시장 위기는 프랑스 프랑화 폭락으로 이어졌었다.
현재 프랑스 금융시장의 3개월 단기대출금리는 연 11%선. 이 금리로 프랑스 금융시장에서 빌린 프랑화를 외환시장에 매각,마르크화를 산뒤 이를 독일 단기금융시장에 3개월물로 투자하면 연 8.4%의 수익률을 보장받을 수 있다.
환율변동이 없다면 3개월동안 0.65%(연2.6%)의 손해만 보는 어리석은 일이겠지만,예컨대 같은기간중 프랑화 가치가 마르크화에 대해 5% 떨어진다고 가정하면 그만큼 갚을 돈이 줄어들게 돼 힘 안들이고 3개월만에 4.35%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더구나 3개월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금명간 프랑화 평가절하가 단행될 것이라는 것이 시장의 기대이고 보면 외환딜러들이 프랑화를 투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 중앙은행과 독일 연방은행(분데스방크)은 프랑화 가치하락을 막기 위해 마르크화를 팔고 대신 프랑화를 매입하는 사상 유례 없는 대규모 시장개입을 계속하고 있다. 프랑스 중앙은행은 이번주들어서만도 외환보유고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1백억달러를 프랑화 매입에 사용했고,분데스방크도 최근 프랑화 매입을 위해 1백억∼3백억마르크를 시장에 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프랑스정부는 또 외환딜러들의 투기를 막기 위해 프랑화 단기대출금리(5∼10일물)를 지난 23일 연13%로 2.5%포인트 인상했다.
이와 함께 양국 재무부와 중앙은행은 전례없는 공동성명을 통해 ERM에 정해진 양국 통화간 기준환율 조정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고,프랑화 시장가치 유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는 등 투기분위기를 진정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독일 금융당국의 프랑화 방어노력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 하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투자자들이 양국 당국의 의지에 의문을 품고 있다는 지적이다. 파운드화와 리라화 위기 때도 당국자들은 똑같은 말을 했지만 결국 집중되는 두 화폐의 투매에 두손을 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통화팽창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는 분데스방크로서는 언제까지고 시장개입을 계속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되고 경기활성화를 위해서는 오히려 금리를 내려야 할 판인 프랑스로서도 통화가치만 생각하고 계속해서 금리를 올릴 수도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양국의 노력은 조만간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되면 최후수단으로 결국 프랑화 기준환율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게 시장 관계자들의 확신이다.
독일·프랑스 양국이 프랑화 방어를 위해 필사적인 공동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EMS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영국과 이탈리아의 잠정 탈퇴로 EMS는 이미 신뢰에 큰 금이 가있다. 프랑스까지 결국 통화가치 하락을 막지 못해 EMS에서 탈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경우 유럽경제·통화통합의 전단계로서 EMS는 사실상 붕괴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는 곧 유럽통합에 대한 전망이 극히 불투명해지는 상황도래를 의미한다.
인플레나 재정적자·무역수지 등 여러측면에서 프랑스가 영국이나 이탈리아 보다는 훨씬 건전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유럽동맹조약(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 국민투표 이후 외환시장 공세가 프랑화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결국 투자자들이 독일·프랑스 양국의 EMS수호,나아가 유럽통합에 대한 의지를 시험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한가지,분데스방크가 정책을 바꿔 금리를 인하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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