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ㆍ서양 공포의 어색한 만남 - 메신저-죽은 자들의 경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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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14면

동양의 공포가 태평양을 건너면 어떻게 바뀔까? 이미 ‘링’과 ‘주온’에서 변이과정을 보긴 했다. 서양의 공포는 동양에 비해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따지고,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를 원한다. 악마가 아니라 원혼이 나온다면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유가 분명히 나와야 한다. 자신이 억울하게 죽은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설명해줘야 한다. ‘메신저’는 동양의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만든, 할리우드판 ‘링’과 ‘주온’처럼 동과 서의 공포가 뒤섞인 공포영화다.

★★ 감독 옥사이드 팡ㆍ대니 팡 주연 페네로프 앤 밀러ㆍ존 코벳 러닝타임 90분

‘디 아이’를 만들었던 태국의 형제 감독 옥사이드 팡과 대니 팡은 할리우드에서 ‘메신저’를 만들었다. 지금은 ‘스파이더맨’의 감독으로 더 유명하지만, 소름 끼치는 공포영화 ‘이블 데드’로 유명해졌던 샘 레이미가 ‘메신저’의 제작을 맡아 팡 형제를 불러들인 것이다. 샘 레이미는 ‘주온’의 리메이크를 위해 일본의 시미즈 다카시 감독을 직접 초빙해 연출을 맡긴 전례가 있다. 동양의 공포는, 할리우드에서 만들어도 역시 동양 감독의 손에서 빚어져야 한다고 믿은 것이다.

대도시 시카고에서 한적한 시골 마을의 농장으로 이사 온 솔로몬 가족. 이사 온 날부터 네 살 된 아들 벤이 허공에 대고 손짓을 하거나 웃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사춘기인 딸 제시도 끔찍한 환상을 계속 보게 된다. 그러나 부모는 제시의 말을 믿지 않는다. 사춘기 아이와 부모의 갈등, 악령 들린 집, 황량한 시골의 공포는 할리우드 공포물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들이다. 등 뒤로 슬그머니 다가오는 그림자,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는 원혼은 동양 공포의 전형이다. ‘메신저’에는 동양과 서양의 공포가 두루 등장한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 많이 봤던 장면들과 설정을 혼합해 놓았을 뿐 설득력은 없다. ‘메신저’는 할리우드 식으로 화끈한 장면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등줄기가 오싹한 동양식 공포를 보여주지도 못한다. 재료가 좋아도 잘못 섞으면 역겨운 냄새가 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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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씨는 영화ㆍ만화ㆍ애니메이션ㆍ게임ㆍ음악 등 대중문화 전반을 투시하는 전방위 평론가로 ‘B딱하게 보기’를 무기로 한 ‘봉석 코드’의 달인입니다.

★표는 필자가 매긴 영화에 대한 평점으로 ★ 5개가 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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