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에 「음악인술」2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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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느냐/ 깡총깡총 뛰면서 어디로 가느냐….
부산시연산9동 정신장애인 복지시설인 성우원에서는 매일 장단이 전혀 맞지 않아 듣기가 거북스런 북소리·탬버린 소리와 함께 더듬더듬 이어가는 음악소리가 울려 퍼져 주목을 끈다.
이 불협화음은 물론 정상적인 유치원 아이들의 음악수업은 아니다.
음악을 통해 정신박약· 뇌성마비등 정신장애를 고치려는 우리사회엔 아직 생소한 이름인 음악요법.
우울할때 음악을 듣고 즐거운 기분을 되찾는 것과 같이 정신박약아등의 상태에 따라 음악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적용, 이들의 두뇌발전을 자극해 신체와 지능발달을 가져오는 치료법이다.
이 음악요법을 부산지역에서 처음으로 도입, 성우원의 장애인들에게 20년째 주사기 없는 인술을 펼쳐오고 있는 사람은 백발의 작곡가인 김동조교수(65·부산여전음악과).
42세의 늦은 나이에 경희대 음악대학원에 입학, 이듬해인 73년 음악요법이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치료효과가 있느냐하는 석사논문을 쓴 것이 인연이 돼 정년을 1년 앞둔 지금까지 전문장애인 치료사로 성우원을 찾고 있는 것이다. 김교수의 음악요법은 장애증상에 따라 집단 또는 개인적으로 펼치는 5단계 치료방법.
혀를 잘 움직이지 못하는 언어장애인에겐 피리·나팔을 불게 하고 신체장애인에겐 북을 치게 하고 두뇌를 자극하는 음악을 들려주는 방법등을 적용, 장애인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두뇌발달과 신체장애를 개선해 나가는 요법이다.
김교수의 음악요법으로 완치됐다는 것은 지능지수 20이하의 정박아들이 모방 가능한 단계인 지능지수 60선 안팎까지 이르렀음을 말한다.
지금까지 김교수의 치료에 힘입어 완치가 된 장애인들은 한해에 10여명. 지난 20년동안 자기이름을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던 2백여명의 정박아들이 이제는 제법 어려운 글자도 쓰고 단순한 작업들을 척척해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김교수는 수업이 없는 토·일요일을 택해 1∼2회씩 성우원을 직접방문, 백발로 뒤덮인 나이에 아이들과 함께 북도 치고 노래도 부르면서 음악요법을 남몰래 전한다.
평일엔 김교수의 지도를 받은 성우원 강사들이 대신 음악요법을 펼친다.
특히 김교수는 성우원에 설치된 음악치료실의 장애인 치료용 악기의 절반 가량을 기증했을 정도로 수업과 작곡외에도 모든 애정을 성우원에 쏟다시피 하고 있다.
김교수는 지금까지「정신장애와 지도요법」등 음악요법과 관련한 7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하는가 하면 일본예술요법학회 회원으로 가입, 정기적으로 연구자료를 교환해오고 있는등 부산지역에선 음악요법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김교수는 『장애인들이 2∼3년 치료 후 눈에 띄게 발전된 모습을 볼 때 가장 기쁘다』 며 『우리나라에도 전문적으로 음악요법을 연구하는 학자가 많이 나와 이 분야의 발전과 함께 장애인치료에 많은 기여를 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고 말했다.
【부산=정용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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