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떠름한 「해명성 수사」/남정호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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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연기군 관권선거 폭로사건이 예상과는 달리 이번 사건의 최고책임자로 지목돼 왔던 이종국지사가 구속이 아닌 불구속으로 낙착되며 마무리 되는 과정을 지켜본 기자의 심정은 착잡하다.
심증으로만 짐작됐던 공무원들의 조직적인 선거개입이 백일하에 드러남으로써 납득할만한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 것은 국민의 입장에서 검찰에 대한 당연한 요구였다.
그러나 검찰은 올 안기부 흑색유인물 사건과 한맥회사건 등 정치적으로 첨예한 사안에서 보여주었던 무기력한 모습을 예외 없이 재연,또 한번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앞의 두 사건과 마찬가지로 외부세력의 압력에 의해서건 아니건 검찰이 수사범위와 사법처리의 한계를 미리 설정해 놓고 그 테두리 내에서 「해명성 수사」의 차원으로 이번 수사를 마무리 지었다는 강한 심증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증은 무엇보다 추석을 끼고 있던 수사기간동안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인지 초기에는 답답할 정도로 느린 행보를 보이던 검찰이 갑자기 수사발표를 하는 등 수사의 완급을 조절한 것 같은 느낌에서 먼저 비롯된다.
이와 함께 검찰이 이 지사를 수사 발표 직전 재소환,9시간에 걸쳐 철야수사를 한 것도 최소한의 모양갖추기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의 커다란 줄기인 관계기관 대책회의의 실체여부와 타지역에서의 관권선거 의혹 부분을 단순히 관련자들이 부인한다는 이유로 덮어둔 것은 「수사의지의 실종」이며 검찰이 검찰권에 대한 불신을 일으키도록 자초한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다.
또 수사도중 충남의 20개 시장·군수가 회의를 갖고 『연기군 외에는 지침서가 전달된 적이 없다』고 수사확대에 제동을 거는듯한 움직임을 보였고 연기군의 일부 단체들이 한 군수의 양심선언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여 검찰 수사에 강한 반발을 보인 것도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검찰의 당연한 행동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이번 사건의 각종 의혹이 말끔히 가셔지지 않음으로써 관권개입 선거에 철퇴를 가해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쐐기를 박고 검찰로 상징되는 법질서의 권위를 확립해 사회분위기를 안정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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