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면전환 겨눈 “고단위 처방”/김영삼총재 기자회견에 담긴 뜻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기존 여권 반발 감수 「개혁」선택/“관권선거 원천봉쇄” 의지 보여
김영삼민자당총재가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한준수 전연기군수 관권선거 폭로사건에 대한 고단위 처방을 내림으로써 이번 사태의 수습은 물론 향후 우리 선거풍토 쇄신의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단체장 문제를 빼고는 야당측이 요구하는 대국민 사과보다 수위를 높여 「사죄」했고,인책범위도 일반적 예상보다 야당측 요구를 거의 수용했다.
김 총재의 이같은 수습방안은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인식해 관권 행정선거의 원천봉쇄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여 비교적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총재는 총리의 경질여부를 묻는 질문에 『평양에 가 계신 분에 대해 어떻게 대답을 하느냐』고 부인하지 않아 개각폭이 정원식총리를 포함,대표적 일 수 있음을 강력 시사했다.
김 총재는 『중립적이고도 선거 내각의 성격을 띠는 대담한 결정을 하겠다』고 새 내각의 성격까지 설명함으로써 경우에 따라선 엄청난 변화가 수반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김 총재의 중립내각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같은 구상 자체가 일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획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관련 정가 일각에선 총리 포함,대폭개각이 이루어질 경우 이는 김 총재가 단순히 대선 대책차원을 넘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까지를 상정한 국정운영 방향의 일단을 선보인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김 총재의 공무원 중립보장 및 관권선거 방지의 제도적 개선책 마련 약속에도 불구,야당측은 관권선거 불식에는 미흡하며 유일 해결책으로 자치단체장선거 연내실시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다만 새 내각이 중립적 성격이 농후하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 하는 법개정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경우 단체장 공세의 강도가 떨어질 가능성은 있다.
민자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제 관권선거는 사실상 종식된 만큼 대선에서의 관권선거 불식을 이유로 단체장선거 연내실시라는 야당측 논리는 근거를 잃었다고 역공할 태세다.
이번 정부·여당의 수습책은 결정과정에서 한때 당정간 이견으로 진통을 겪기도 했으나 결국 김 총재의 의견대로 방향을 잡게됐다.
이는 여권내 힘의 중심축이 노태우대통령으로부터 김 총재에게로 급속히 옮겨지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김 총재는 이제 여권의 실질적 책임자로서 노 대통령의 임기말 마무리를 보좌하고 정국운영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재확인한 셈이다.
아울러 이번 김 총재의 수습책 마련 과정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일선 공무원과 기존여권의 반발을 감수하고 정치적·사법적 문책을 매우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선 점이다.
야당 출신인 김 총재에게 당면과제로 꼽혀온게 범여결집이었는데 이번 사건의 초기부터 보여준 김 총재의 행동은 오히려 기존여권을 자극시켜 그와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위험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결국 김 총재는 기존여권의 프리미엄을 택하기 보다 개혁의 새 이미지로 대선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한듯 하다.
이같은 기조는 더 나아가 국정 전반의 기조를 개혁의 방향으로 물꼬를 터 기존의 틀이 깨져나가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향후 정국전개가 크게 주목되고 있다.<허남진기자>
◎김영삼총재 일문일답/누가 보든 납득할 수 있게 개각/「장선거」는 분명히 연내 않겠다
­연기군 관권선거와 관련한 개각시기와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또 청와대와의 조율은 돼있나.
『18일 오전 노태우대통령과 협의,금주중 결정하겠다. 중립적이고도 선거 내각의 성격을 띠는 대담한 결정이 될 것이며 누가 보든 납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
또 민자당 후보겸 총재로서 당당한 결정이 될 것이다. 개각문제와 관련,노 대통령과의 갈등은 있을 수도,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면 개각대상에 정원식총리까지 포함된다는 뜻인가.
『지금 정 총리는 남북고위급회담 참석차 평양에 가 계신다. 그 문제를 물으면 어떻게 답변하란 말이냐.』
­야당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정국의 최대현안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연내 실시여부를 분명히 밝혀달라.
『총선과 대선에 단체장선거까지 네차례의 선거를 치르는 것은 우리 경제에 엄청난 주름살을 가져올 것이다. 더구나 정당 추천이 가능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가 치러졌을 경우 오히려 관권 부정선거의 소지를 마련해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또 국가 최고 통치자를 선출하는 대선과 단체장선거를 동시에 실시하는 것은 투·개표 관리상에도 문제가 많다. 분명히 말하지만 단체장선거는 금년내 실시하지 않겠다.』
­연기군 관권선거의 뿌리는 청와대까지 뻗쳐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를 건의할 용의는.
『여당총재인 내가 책임있는 얘기를 하지 않았나. 노 대통령의 임기가 5개월 밖에 남지 않았으니 남은 임기동안 명예스럽게 국정을 수행해 퇴임할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한다.』
­사건 발생 당시에는 침묵하다가 지금와서 기자회견을 하는 이유는.
『말을 많이 하거나 즉각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문제는 사태를 정확하게 진단해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다. 정치지도자는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김두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