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금 50만불 총선자금 사용/「고첩 김낙중」어떻게 활동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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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합법적 전위정당 건설을 목표/북의 공로훈장·통일상 수상도
김낙중씨 간첩사건은 김씨가 무려 36년동안 「진보적 지식인」「통일지상주의자」 등으로 활동하면서 암약해온 「최장기 고정간첩」이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북한이 「통일혁명당」과 같은 비합법 지하정당활동과 함께 남한내에 합법적인 전위정당을 건설하려 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안기부는 김씨가 14대총선당시 민중당후보들에게 막대한 선거자금을 지원하고 거액의 미화를 남대문시장 등지의 암달러상을 통해 환전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김씨를 끈질기게 내사한 끝에 간첩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김씨가 간첩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은 54년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재학시절부터라고 안기부는 파악하고 있다.
당시 김씨는 『조국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이 상호 통치권을 승인하고 초국가적인 기관으로 고려민주연방회의를 조직·운영해야 한다』는 「통일독립청년 고려공동체 수립안」이라는 통일방안을 작성했다.
김씨는 55년 6월 북한당국자들을 만나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임진강을 건너 북한으로 넘어갔으나 오히려 대남공작기구인 연락부소속 「인민경제대학」특설반에서 사상교육을 받은 뒤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56년 6월 송환형식으로 귀환했다는 것.
귀환후 반국가단체협의죄만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57년 7월 대법원면소판결로 출소한 김씨는 경제학을 전공하라는 북한의 지시대로 고려대 경제과로 전학,지하조직 「협진회」「신조회」 등의 사회민주주의 연구조직을 결성,사회주의사상을 전파했다고 안기부는 밝혔다. 안기부는 김씨가 새로운 진보정당에서 대선후보를 내세울 경우 선거자금을 지원키 위해 ▲사채놀이 1억2천만원 ▲은행예치 7천만원 ▲부동산매입 3억3천8백만원 등으로 분산투자해 놓고 미화 1백만달러는 자신의 집 장독밑에 묻어놓는 등 혁신정당 건설을 위해 치밀한 공작계획을 수립한 사실도 밝혀냈다.
김씨는 무전송신과 위장무역거래서류 등을 통해 자신의 공작사업을 북한에 보고해 왔으며 그 성과를 인정받아 91년 10월 김일성으로부터 공로훈장을,91년 12월에는 북한정부로부터 「민족통일상」을 수상하고 김일성이 보낸 산삼·녹용을 선물로 받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김씨에게 포섭된 심금섭씨도 91년 4월 태국 방콕에서 북한사회문화부 부부장 지원국의 알선으로 북한에 살고 있는 형(64)을 만났으며 같은해 11월 청해실업 사무실에서 남파간첩 임모·이모와 접선,강화도의 무인포스트에서 미화 1백50만달러,권총 1정,실탄 48발 등을 발굴해 이중 50만달러를 명동·남대문시장 등지의 암달러상에게 환전해 김씨와 함께 총선자금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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