삯바느질 쌈지돈 희사 임성임씨(지방 패트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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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독서실 하나 지어줄라 카는데…”/선산할머니의 「건학」 실천/청소년 공부방 마련 동분서주/무료도서관 지어 기증하기도
『남 몰래 숨겨놓은 재산이 조금 남아 있지. 공부할 곳을 찾아 헤매는 놈들 한테 독서실 하나 지어줄라 카는데….』
태어나서 「낫 놓고 ㄱ자」도 배울 기회가 없었던 할머니가 헐벗고 굶주리며 평생을 모은 재산으로 「건학입사 궁리수신」(학교를 세워 스승을 모시고 진리를 다해 몸을 닦는다)의 정신을 몸소 실천해 가고 있다.
경북 선산군 선산읍 이문동 83 임성임할머니(76).
임 할머니는 최근 선산읍내 중·고교생들이 입시공부할 곳이 없어 인근 구미·김천으로 독서실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다 『고향 청소년들을 위해 독서실을 마련해주어야 겠다』고 작정,내년 3월에 지상 2층·연건평 1백20평 규모의 독서실을 지어 지역사회에 기증키로 했다.
임 할머니가 계산하고 있는 건축비는 5천만원.
『땅은 현재 선산도서관자리 국유지중 1백평을 무상임대받기 위해 선산군과 협의중이나 뜻대로 안될 경우 군수영감을 찾아가 막무가내로 매달릴 셈』이라고 했다.
이 선산도서관 역시 임 할머니가 89년 4월 사재 3천8백만원을 들여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의 3억8천만원만큼이나 보람되게 써보고자 선산군으로부터 국유지 1백34평을 기증받아 시멘트 블록을 손수 찧고 땀흘려 쌓아 지은 연건평 1백30평에 2층 규모(1백28석)로 누구나 무료로 사용토록 지역사회에 기증했던 건물.
『선산도서관은 일반인들도 많이 드나드는데다 장서 2천여권도 거의 문학전집·대중소설류라 학생들의 입시공부에는 큰 도움이 안되지. 분위기도 산만하고…. 그 아이들 한테는 독서실이 제일 급해.』
임 할머니는 14세때 성도,이름도 모르는 더벅머리 총각을 남편으로 맞아 외아들을 두고 찌든 가난에 파묻혀 살아오다 5년만인 19세때 청상이 됐다.
유일한 혈육인 외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켜보겠다』며 서울로 데려가 뒷바라지하다 6·25를 만났으나 피난길을 놓치고 들판을 헤매다 박격포탄에 결국 아들마저 잃었다.
그후 홀몸으로 고향으로 돌아간 임 할머니는 입에 풀칠이나마 하기위해 이 집 저 집 돌며 날품을 팔았고 한푼 두푼 돈 모으는 재미로 삯바느질·모내기는 물론 닥치는대로 몸을 돌 굴리듯 했다.
그러기를 한평생. 조석반 죽으로 끼니를 이어가면서도 쌈지돈은 축내지 않았다.
현재 10명 남짓한 선산도서관 관리사에 방한칸,부엌 한칸을 내어 몸만 붙여 지내고 있는 임 할머니는 지금도 그 흔한 가전제품 하나 사지 않고 이웃 주민들이 새 것으로 바꾸면서 버린 흑백TV·구형 냉장고를 주워 사용할 만큼 지독한 「노랭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선산도서관에 설치해둔 자판기에서 나오는 수입금에서 연간 1백만원씩을 장학금으로 내놓고 밤새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밤참으로 라면을 끓여주는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못배운 것이 한이 돼 핵교(학교)나 한채 지어 가난하고 부모없는 학생들을 공부시키는게 평생 소원이었는데 돈이 돼야지….』
임 할머니의 재산이 얼마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주위에서 1억원 정도 되리라고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어서 추측대로라면 이번에 독서실을 지을 경우 평생 모은 전 재산을 다 쏟아넣는 셈이 된다.
그러나 임 할머니는 『이런 일들이 보람』이라고 웃는다.<선산=김선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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