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31. 잭 니클러스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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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비슷한 시기에 ‘골프 인생’ 을 걸어온 잭 니클러스. 그는 미국 메이저대회 통산 18승으로 역대 최다 우승 기록 을 갖고 있다. [중앙포토]

감나무 클럽 하면 떠오르는 골퍼가 있다.

'황금곰' 잭 니클러스(67)다. 앞서 언급했지만 그는 나와 함께 라운드했던 골퍼 중 감나무클럽으로 가장 공을 멀리 보낸 인물이다. 니클러스는 아마추어 시절에도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1959년과 61년 US아마추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해 미국 아마골프 무대를 평정한 그는 프로로 전향한 62년 US오픈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는 US오픈 4승, 브리티시오픈 3승, 마스터스 6승, PGA 챔피언십 5승을 거두며 메이저대회 최다승(18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골프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통산 우승 횟수도 113승이나 된다.

내가 니클러스와 만난 것은 68년 호주 PGA선수권대회였다. 그해 나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월드컵대회에 이일안 프로와 함께 출전했다. 우리는 월드컵대회에 참가하러 가는 길에 경기 감각도 익힐 겸 호주에 들러 서호주 퍼스오픈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 PGA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서울을 떠나 퍼스.시드니.베이루트를 거쳐 로마에 이르는 비행기 여행길에 올랐다.

니클러스와 처음 대결한 곳은 멜버른이었다. 우선 퍼스오픈.

처음 가본 호주는 정말 큰 나라였다. 내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느꼈던 것보다 오히려 충격이 컸다. 우리나라와 반대 방향인 찻길과 토끼같이 깡총깡총 뛰어다니는 캥거루를 보고 마냥 신기해했다.

그런데 호주 골프장에는 캐디가 없었다. 9월 말에서 10월 초 무렵이었다. 호주에 더위가 닥칠 때여서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라운드를 하다가 도중에 포기한 적도 있다. 캐디가 없으니 대회를 어떻게 치를지 난감했다. 할 수 없이 주최 측에 부탁해 자원봉사를 신청한 골프장 회원을 소개받았다. 핸디캡이 6이라고 해 마음을 놓았다. 그는 내게 전화로 "어느 호텔에서 묵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굳이 "당신을 호텔에서 픽업하겠다"고 했다.

호텔 로비에서 그를 기다리는데 롤스로이스 한 대가 미끌어져 들어왔다. 그리고 아주 키가 작은 사람이 내리더니 "미스터 한"을 불렀다. 나는 어마어마한 부자를 캐디로 삼은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롤스로이스는 상당히 고급차였다.

롤스로이스를 타고 대회에 나가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1라운드부터 계속 파를 잡으며 쾌조의 컨디션을 이어갔다. 신기하게도 보기를 범할 위기에 버디를 잡거나 극적으로 파를 지키는 일이 거듭됐다. 벙커에 빠져 '이제 보기구나'하고 낙심하고 있으면 홀로 빨려들어가는 행운의 벙크샷이 세 번이나 있었다. 나는 3라운드까지 10위권을 달리다가 공동 6위를 차지했다. 기대 이상의 수확이었다. 상금도 제법 됐다. 그 좋은 기분은 니클러스를 만나게 해주는 데까지 이어졌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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