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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덩이 체임 빨리 풀어야한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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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수출 경쟁에서 밀리고 국내 수요 기반도 마련하지 못한 기업들이 잇따라 도산하면서 체임규모가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추석을 지나 연말이 가까울수록 사태가 더욱 악화될까 걱정이다.
은행은 은행대로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을 외면하고 있고,금융산업의 자율경영을 촉구하고 있는 정부는 임금체불 기업을 지원하라고 은행을 다그칠 수도 없는 처지다. 더구나 부실업체들이 갖고 있는 부동산을 선뜻 나서서 사려고 하는 사람들조차 없어 추석을 앞두고 체임이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8월 중순 현재 전국의 미청산 체불임금은 5백69억원으로 작년 같은기간보다 무려 13배나 늘어났다. 노동부가 지방관서를 통해 추석 대비 특별노무관리 대책을 시달하고 상습적인 체임사업주는 모두 사법처리토록 하는 한편 정부의 관계부처 회의에서는 관급공사 또는 관서물품 대금의 일괄청산방침을 마련했지만 문제는 결코 간단치가 않다.
대부분의 상장사들은 재고자산과 외상매출이 크게 늘어나 영업활동을 통한 자금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한중수교에 따른 긍정적인 요인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수출여건이 기대이상으로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최근의 체임급증은 경기둔화현상 뿐만 아니라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쟁력을 잃어 버린 기업들의 퇴출에서 빚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은 매우 신중한 고려를 거쳐야 한다.
우선 정부가 관급공사대금을 제때 지불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금도 공사를 맡은 기업들에 예정된 비용을 지출하지 않거나 지연시키는데서 나타나는 부조리가 시정되고 않고 있다. 부가가치세와 관세환급액도 기한내에 지급해 기업의 자금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실제로 정부의 복잡한 행정절차로 인해 제때에 돈이 돌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러한 부분에 대한 철저한 감사가 필요하다.
또한 산업구조 조정과정에서 도산사태가 빚어지고 있음을 빙자하여 고의적으로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도주하는 사업주에 대한 사법당국의 엄중한 조치가 요구된다. 월30만원 정도의 저임금으로 일해왔던 종업원들을 버리고 자취를 감춰버린 경영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노사협조체제를 다져가는 산업계의 노력을 밑바닥에서부터 허물어 버리는 행위로 규탄받아야 한다.
끝으로 경영정상화가 가능한 체불업체에 대해서는 특별지원이 불가피하다. 몇몇 유망중소기업들이 한때 자금이 돌지 않아 임금을 체불하는 사태를 부실기업의 경우와 동일시해 지원을 거부한다면 탄탄한 중소기업을 육성할 길은 막막해진다. 건실한 기업을 가려내여 중소기업 특별자금을 대주는 회생책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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