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 대응인가 '쌀 달라' 압박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전문가들은 북한의 의도를 두 가지로 분석한다. 하나는 미사일 성능 개선을 위한 통상적인 시험 발사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한.미.일과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 몸값을 올리려는 속셈이다.

군 당국과 정부 당국자들은 '통상적인 훈련' 쪽에 무게를 싣는다. 합참 관계자는 "이번 미사일 발사는 지난해 7월 대포동 2호 시험 발사 이후 10개월 만이다"며 "북한군의 전투준비 태세를 점검하는 동시에 남측의 전력 증강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군사 전문가는 "북한군은 매년 5~6월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사정거리 50~60㎞인 미사일이었다고 한다.

다른 군사 관계자는 "미.일을 겨냥한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면 사정거리 1000㎞ 이상인 스커드 미사일을 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포동 미사일 같은 장거리 미사일을 쏠 경우 수백억원의 돈이 들어간다. 그 때문에 단거리 미사일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국은 이 미사일의 사정거리에 있다.

한국 해군이 '꿈의 전투함'으로 불리는 이지스급 세종대왕함을 진수한 것도 북측을 자극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북한군의 동요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결의 표명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 분야의 시각은 다르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북측은 중요한 대외 협상을 앞두고 핵.미사일 능력을 과시해 협상력을 높여왔다"고 말했다. 예컨대 1993년 5월 북.미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노동 1호 미사일(사정거리 1300㎞ 추정)을 발사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98년 8월엔 '광명성 1호'라고 이름 붙인 대포동 1호 미사일(사정거리 1800~2500㎞)을 쐈다.

북한이 25일 오전 동해상으로 사거리 100㎞ 지대함 미사일을 발사했다. 사진은 북한이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제 ‘실크웜’ 미사일 발사 장면.[연합뉴스]


미사일 발사를 통해 대결 국면을 최대한 고조시킨 것은 지난해 7월이었다. 대포동 2호 미사일 등 7발의 미사일을 쏘면서 미.일의 대북 봉쇄 정책에 맞섰다. 석 달 뒤엔 1차 핵실험을 강행해 전쟁 일보 직전까지 몰고갔다. 가히 '위기의 정치학'이라고 할 만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그 결과 북한은 6자회담과 북.미 베를린회담을 통해 BDA 동결 자금을 해제시켰고 6자회담 참가국들의 대북 지원을 약속받았다. 남측의 쌀.비료.생활용품 운송도 재개됐다.

그런 점에서 24일 북한 민족화해협의회가 낸 대변인 담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명은 "북남 협력사업을 핵문제와 연관시키고 누구의 개혁.개방까지 들먹이면서 불순한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 하고 있다"며 "참을 수 없는 엄중한 도발이고 도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13 합의 이행과 연계해 남측이 쌀 지원 시기를 늦출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한 반응으로 풀이했다.

외교 분야의 한 전문가는 "북한은 미사일.핵 카드를 번갈아 써가면서 협상의 지렛대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미사일을 쏴놓고 한.미.일의 과민 반응이 나오면 이를 역이용하는 수법까지 쓴다는 것이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은 "북한은 미사일 성능을 개선해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며 "노무현 정부가 이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양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