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자, 공공기관 출입 자유롭고 카운티의 경찰서에도 기자실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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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기자실 통폐합' 조치가 미국에서도 비판과 냉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부가 주장하듯 그 조치가 '글로벌 스탠더드'나 '선진화 방안'이어서가 아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라는 것이다.

미국 아메리칸대 공공정책스쿨의 리처드 베네디토(65.사진) 교수는 25일(한국시간) "한국 정부가 행정부처의 기자실(press room)을 닫는다는 보도를 봤는데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0여 년간 정치분야 기자로 활약해온 그는 미국 내 최대 부수인 '유에스에이 투데이'지의 백악관 출입기자를 끝으로 지난해 9월 은퇴한 뒤 교편을 잡고 있다. 베네디토 교수는 이날 '미국의 대선과 언론 보도'를 주제로 강의하던 중 한국에서 온 기자에게 "물어볼 게 있다"며 국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기자실 통폐합 얘기를 꺼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나름의 명분과 이유를 내걸겠지만 언론인뿐 아니라 한국 국민 역시 '정부가 뭔가를 숨기려 한다' '뉴스가 나오는 것을 막고 싶어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베네디토 교수는 미국 내 기자실 운영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행정부처에는 '브리핑룸'과 '프레스룸'이 있다. 국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기자실에 해당하는 프레스룸은 기자들이 취재와 기사 작성을 위해 머무는 공간으로, 테이블과 통신망 등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브리핑룸은 대변인 등 관계자가 현안을 설명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곳이다.

정부는 그동안 '선진국에는 일본을 제외하곤 한국과 같은 기자실이 거의 없다'는 논리를 펴왔다. 미국에도 백악관.국방부.국무부 등 극히 일부에만 이런 시설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까지 취재 현장을 누볐던 베네디토 교수의 설명은 달랐다. 그는 "백악관을 비롯해 상무부.재무부.보건복지부는 물론이고 더 작은 기관인 재향군인회 같은 곳에도 프레스룸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군.郡)의 경찰서에도 브리핑룸과 프레스룸, 공보관이 있다"고 소개했다. 페어팩스 카운티는 버지니아 공대 총기사건의 범인 조승희가 살던 곳이다. 미국의 각 부처에서 기자들이 공무원과 접촉하는 방식도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접촉 제한' 과는 거리가 멀었다.

베네디토 교수는 "'공보관'(Press Secretary)의 역할은 기자에게 특정 업무 담당자가 누구인지 안내하고 만날 스케줄을 짜주는 정도"라며 "관료들을 만날 때 반드시 공보관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중앙정보국(CIA) 등 일부 특수 부처를 제외한 대다수 공공기관에서 기자들은 자유롭게 건물 내부를 돌아다닐 수 있으며, 안면이 있는 관료들과는 그의 사무실에서 편하게 만나곤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기자와의 일문일답.

-부처 건물 내부에 기자실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뭔가.

"공공분야를 취재.감시하려면 업무를 담당하는 관료들을 알아야 하지 않나. 기자실은 취재원을 발굴할 수 있는 장소다. 그래서 기사를 쓰지 않고 그냥 시간을 보내도(hanging out)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왜 기자실을 통폐합하려 한다고 생각하나.

"미국은 민주주의의 역사가 200년 됐다. 하지만 한국은 1948년(건국 헌법 제정)부터였지 않나."

워싱턴=김성탁 기자

◆ 리처드 베네디토=미국 뉴욕 주정부와 연방정부.의회 등을 40여 년간 취재해온 정치전문 기자다. 1982년 유에스에이 투데이의 창간 멤버로 참여해 창간호 1면에 커버스토리를 썼다. 수차례 대선을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4월 '정치인도 사람이다'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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