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편되는 동북아질서(한·중 수교시대: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대만과 교역유지가 “숙제”/대만도 「배신감」속 관계지속 희망/충격 소화돼야 새 협상 가능할듯
한중수교로 한국과 대만관계는 단교라는 외교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냉전시절 분단국가로서,비슷한 위치에 놓인 반공국가로서뿐만 아니라 항일투쟁시절부터 협조를 해온 양국관계로 보아 중국의 정통성을 본토에 있다는 선언을 한다는 것은 「배신」이라고 대만측은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냉전시대가 이미 무너져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돼가는 시점에서 과거의 의리에 연연한다는 것은 시대에 동떨어진 것이다.
특히 동북아에서는 냉전질서에 기초한 편가르기와 비정상적인 관계가 발전적인 미래 구상에 절대적인 장벽이 돼왔다.
그런 점에서 역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한중양국의 정상적인 관계회복은 불가피한 추세였다고 할 것이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미국은 아시아에서의 역할을 축소해가고 있다. 그 미국의 역할이 축소된 공백은 일본이 독차지 하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한중양국이 정상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경제·군사대국 일본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취할 때 지역 안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게 정부의 판단이다.
대만은 지난 80년대 말부터 탄성외교를 내세워 「하나의 중국」정책을 사실상 철회해가며 경제력을 무기로 한 외교기반 확대에 전력을 쏟아왔다.
현재 대만은 지난달 중국과의 수교줄다리기 끝에 중국측이 단교를 선언케한 니제르를 포함해 30개국과 외교관계를 갖고 있으며 외교관계가 없으면서 실질관계를 유지하는 나라는 1백20개나 된다.
라트비아·나우루 등 총영사관을 설치한 공식영사관계와 볼리비아처럼 「중화민국」「영사」 등의 호칭을 사용하며 직접교섭권을 인정하는 준 공식관계가 있다.
이밖에 비공식관계로 피지 등의 통상대표부,싱가포르·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대표사무소,미국의 위원회 등이 있다.
통상대표부의 경우 국호나 국기를 사용할 수 없으나 주재국과의 직접교섭·외교특권 등이 허용된다. 대표사무소는 통상대표부에 국호는 아니나 대만대표부라는 표현을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대만으로서는 그동안 정치적으로 「형제관계」에 있고 경제적으로도 교역량이 엄청난 한국으로부터 결국 따돌림 당했다는데 대해 상당히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대한 보복조치의 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만측이 앞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2개의 중국을 인정해줄 것 ▲명동에 있는 대사관 등 재산권의 보호 ▲양국간의 경제협력관계 유지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양국 재무장관간의 연례회담이 보류됐으며,한국정부는 중국의 「하나의 중국」정책을 수용함으로써 대만정부를 실망시켰다. 또 명동의 대만대사관도 중국정부의 정통성이 인정되는 즉시 중국정부에 되돌려준다는 방침이어서 대만정부로서는 유감스런 결과가 됐다. 따라서 대만이 한국에 대해 강력한 대응조치를 강구한다는 것도 이런 불쾌감과 불만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예상되는 대만의 조치로는 ▲단교통보 ▲무역제재 ▲인적교류 제한 ▲북한과의 관계개선 추진 등이다.
그러나 대만정부는 이미 대중수교를 예상해왔고 그것이 저지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대만이 한중수교 예정을 사전 통고받자마자 그 다음날로 이를 언론에 흘리는 등 불만을 표시했지만 이는 다른 한편으론 대만국민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사실 대만측의 「배신」운운하는 강력한 항의도 대내용의 성격이 짙으며,단교이후의 대표부 형태와 격을 저울질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현대 대만의 실제 모습이란 느낌이다. 그만큼 대만정부는 한국정부의 움직임을 오래전부터 감지하고 있었고,지난 5월 장언사총통부비서실장이 총통특사로 방한했을 때도 이미 한국고위관리로부터 분명한 입장 전달을 받았다.
또 마영구대륙위원회 부위원장도 한국과의 관계유지를 희망한다는 냉정한 표현을 했고 주한대사관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설은 국민감정을 반영한 일부의 목소리일뿐 정부당국의 입장과는 전혀 다르다고 부인한 것도 속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무역제재다. 대만당국자는 이미 무역우대조치 등을 철폐할 뜻을 비추고 있어 당장 가시화될 전망이다.
한·대만무역은 지난해 30억달러를 돌파했으며 금년에는 4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지난해 한국이 4억6천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또 대만의 6개년 국가경제건설계획사업에 한국기업들의 참여가 어려워질 것이다.
대만은 한국에 대해 보복을 한다는 측면과 함께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과 대만간의 경제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다고 해 북한이 중국을 저버리고 외교적 관계를 맺을 수는 없으며 경제관계도 한계가 있다.
아직 정부는 대만측과 한중수교 이후의 관계에 대해 협상을 시작하지 않아 그 형태는 불분명하나 중국측으로부터 대만정부에 대해 외교특권과 직접교섭권을 인정하는 양해를 얻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흥분이 가시면 양국은 통상대표부 또는 대표사무소 등의 형태로 양국의 경제적 기존관계를 유지하는 방안에 대해 협의를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김진국기자>
◎조어대
이상옥외무부장관이 24일 첸치천(전기침) 중국외교부장과 회담을 갖고 한중수교 공동성명을 발표할 조어대 제18관인 수반각. 조어대는 과거 키신저·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 등도 중국과의 수교문제를 협의하는 회담장으로 사용했었다. 조어대 23관중 유일하게 황제의 색인 노란색 지붕을 한 수반각은 북한의 김일성주석,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 등이 방문했을 때 사용했던 곳으로 지난 4월에도 양국 외무장관회담이 이곳에서 열렸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