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 이세돌, 대제국 건설의 창을 꽂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5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4국
[제6보 (86~103)]
白.胡耀宇 7단 黑.李世乭 9단

광활한 좌하 일대에서 이세돌9단의 장검이 번득이고 있다. 그러나 백의 진용은 견고하고 뿌리박힌 세력은 단단해서 절세의 힘을 지닌 이세돌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전보의 마지막 수인 흑▲는 그래서 내놓은 타협안이다. 용틀임하듯 천지개벽을 꿈꿨으나 부득이 그것을 포기한다는 신호다.후야오위는 기다렸다는듯이 그 타협안을 받아들인다.

86으로 이은 것이다. 이 한수로 흑의 결사대는 생명력을 잃고 산산이 부서졌다. 그 모습을 씁쓸히 지켜보며 李9단은 87부터 터를 잡는다. 백의 대군이 완전 포위 상태로 지켜보는 가운데 조그맣게 생명의 터전을 마련해간다.

되젖혀간 후야오위의 88에는 조심하라는 작은 경고가 담겨 있다. 흑은 <참고도>흑1, 3으로 두고싶다. 실리 면에선 변보다 아무래도 귀가 크기 때문이다. 또 기회를 봐서 죽은 흑돌들을 살려낼 수도 있다. 그러나 A의 급소가 기분 나쁘고 무엇보다도 후수를 잡는 날엔 마지막 꿈이 사라질 수 있다.

흑의 야망은 우상 일대를 키워 웅대한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비록 좌하에서 실패했지만 일부라도 터를 잡은 뒤 선수를 잡아 우상으로 선행하다면 이곳에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결할 수 있다. 89부터의 수순은 그래서 나타났다.

실리는 내줬지만 지금은 작은 득실에 신경쓸 때가 아니다. 李9단은 상처투성이의 몸을 일으켜 우상을 본다. 드넓은 땅이다. 李9단은 질풍처럼 말을 달려 103에 창을 꽂는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고 외친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