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1조원 환원'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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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이 고민에 빠졌다. 지난해 비자금 사건 때 약속했던 '1조원 사회 헌납' 방안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항소심 선고공판은 이르면 7월로 예정돼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4월 19일 '대국민 사과 및 사회공헌 방안'을 발표했다. 검찰이 정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부랴부랴 사회공헌 방안을 만들면서, 정 회장 부자의 글로비스 주식 2250만 주(당시 주당 4만4550원으로 시가 1조원)를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내용을 넣었다. 문제는 금액인데, 현대차 측은 주식을 내겠다고 했지 1조원을 못박아 헌납하겠다고 한 적은 없다고 주장한다. 글로비스 주식은 한때 2만원 대 초반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급등해 21일 현재 주당 4만250원으로 정 회장 부자의 보유 주식 가치는 9056억여원이다.

그룹 관계자는 "헌납 발표 당시보다 글로비스 주가가 하락한 상태에서 1조원을 만들려면 정 회장 부자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팔아야 한다"며 "이럴 경우 경영권 방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1000억원어치 정도 판다면 지배구조 자체가 약화돼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외부의 시각은 다르다. 당시 "주가가 떨어져 1조원에 못 미칠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현대차 측은 "보유 재산을 팔아서라도 1조원을 채우겠다"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특히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0부는 3월에 열린 항소심 1차 공판에서 "1조원 사회 환원 진행상황을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1조원의 사회공헌 진행상황이 항소심 선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내부적으로 새로운 사회공헌 방안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용은 정 회장 부자의 글로비스 주식을 모두 '부품기술재단'(가칭)에 헌납한다는 것이다. 이 재단은 다른 사회공헌재단과 달리 국내 부품.소재업체의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업무를 주로 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내 부품.소재 업체들은 기술개발 자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런 업체들을 지원하는 재단을 만든다면 한국 자동차산업뿐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태진.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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