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진출 한국기업 잇단 추태로 나라 망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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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근로자 폭행, 임금체불, 야반도주….

동남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추태가 잇따라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또 일부 기업의 잘못으로 국가 이미지가 떨어지거나 현지의 다른 한국 기업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이는 노동부와 외교통상부.국제노동재단.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노총 등 5개 기관이 최근 스리랑카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의 노무관리 실태를 공동 조사한 결과 드러났다.

이에 따르면 현지의 한국 기업 1백20여개 중 50여곳이 경영 사정이 나빠지자 임금 등을 체불하고 고의 부도를 낸 뒤 국내로 무단 철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9곳은 경영자가 한밤에 몰래 도주했다.

4천여명의 근로자를 고용해 온 국내 대기업 K사(의류업체)의 경우 경영이 어려워지자 지난 9월 느닷없이 한국인 대표가 몰래 한국으로 도피했다. K사는 직원들의 임금과 우리나라의 고용보험에 해당하는 사회보장기금 등을 체불한 상태였다.

이 회사가 체납한 기금만 6백40억루피(약 6천억원)다. 이 때문에 현지에 남은 한국인 직원들조차 귀국비용이 없어 발을 구르다 한국투자업체협의회 회장이 개인비용으로 귀국시키기도 했다.

또 가방생산업체인 W사의 사업주는 카지노에 빠져 있다 회사가 기울자 야반도주했다. 이에 격분한 현지 근로자들은 한국인 직원을 납치해 감금하고 한국대사관에 몰려가 시위를 하기도 했다.

장난감 메이커 C사는 중국과 출혈경쟁을 벌이다 경영이 나빠지자 한국인 직원들이 한꺼번에 도주했다. 이와 함께 국제민주연대가 펴낸 해외 한국기업 인권백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봉제업체 직원 수백명이 사장의 야반도주로 30억루피(약 5억원)의 임금을 못 받았다며 한국대사관에서 시위를 벌였다.

또 핸드백 등 여성용품을 만드는 베트남 L사의 한국인 부사장은 회사 문이 제대로 닫혀 있지 않다며 수위를 심하게 폭행해 사법당국에 여권을 압수당하고 조사를 받고 있다. 베트남의 S사 한국인 관리자는 여직원들이 작업장에서 잡담을 했다며 신발로 뺨을 때리다 강제 추방되기도 했다.

엄현택 노동부 국제협력관은 "현지 노사관행을 꼼꼼히 살피지 않고 임금이 싸다는 이유로 무작정 진출했다가 경쟁력이 떨어지자 무단 철수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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