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인물 없어 범여권 통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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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광주 5·18 국립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각 당 대표들이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 중도개혁통합신당 김한길 대표, 민주당 박상천 대표,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 국민중심당 심대평 대표.[연합뉴스]

1980년 5월 18일 광주 금남로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러나 27년이 흐른 18일, 금남로는 축제의 장으로 변해 있었다. 차량 통행을 막은 거리에서 대학생과 주부들이 널뛰기를 하고 아빠와 함께 나온 아이는 굴렁쇠를 굴렸다.

광주는 97년 김대중(DJ) 후보에게, 2002년 노무현 후보에게 몰표를 줬다. 호남의 '심장'이다. 7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범여권 대선 주자들이 이날 앞다퉈 광주를 찾았다. 하지만 광주는 달라지고 있었다.

"한나라당 후보도 찍어줄 수 있지요. 억지로 (범여권의) 누구를 밀어서 대통령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모임에도 가 보면 4~5년 전하고는 분위기가 많이 다릅디다." 금남로에서 만난 이재영(63)씨는 당보다 인물을 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교직에서 은퇴했다는 신상우(67)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누구 지지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더냐고들 합니다. 먹고살기는 여전히 힘들고… DJ도 도청을 자기 고향인 무안으로 가져가 버렸잖아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주부 김모(49)씨도 "며칠 전 이명박씨와 박근혜씨가 광주에 왔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가 본 적이 있다"며 한나라당에 관심을 보였다.

이런 기류는 범여권에 마땅한 대선 후보가 없는 상황이 영향을 미친 듯했다. 5.18 기념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주부 박모(47)씨는 "고건씨 같은 분은 참 괜찮았는데, 지금은 아무리 봐도 인물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만난 상당수 시민은 "여권이 단합해 한 사람을 내세우면 이명박씨 등 한나라당 후보와 비교해 일 잘할 사람을 뽑을 것"이라고 했다. "분열된 채로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겠느냐. 당연히 통합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사활을 걸고 다투고 있는 통합 논쟁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김명환(80)씨는 "통합하자면서 누구는 빼고 누구는 넣고 판가름을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약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모(53)씨도 "주로 호남에 의원이 있는 민주당이 유리한 점만 가지고 말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상천 대표의 '국정 실패 세력 참여 배제론'에 대한 반박이다. 반면 한병만(66)씨는 "열린우리당에서 잘나간 이들이 2선으로 물러나야 통합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시민은 "노 대통령이 잘했으면 여권이 지금 이 모양이 됐겠느냐"고 화살을 노 대통령에게 돌렸다.

행사장 주변에서 만난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이런 민심의 변화에 대해 "과거처럼 호남에서 90%대의 몰표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호남은 결국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5.18을 맞아 가두행진을 하는 대학생 무리를 지켜보던 한 시민은 "민주화는 이미 완성됐어요. 이젠 잘 먹고살게 해줄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을 찍어야죠"라고 말했다.

광주=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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