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고미숙 지음, 그린비, 224쪽, 1만1900원
자나깨나 부모.교사의 입에서 떠나지 않는 말은 "공부해라!"다. 공부하란 말만 안 들어도 살 것 같았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학부모가 되는 순간,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는 듯 자녀에게 공부하라며 잔소리를 해댄다.'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자인 지은이도 지겹도록 듣던 말, "공부해라"를 외친다. 또 공부하라고?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가고 방과 후엔 학원에서 심화 학습을 하는 데다 따로 과외 수업까지 받는데, 혹은 청소년 시절을 그렇게 고생스럽게 보낸 걸로도 족한데 무슨 공부를 더 하란 말인가.
지은이는 말한다. 그건 공부가 아니라 점수따기라고. 지은이는 성적, 취직 공부는 죄민수식으로 말하자면 '공부계의 쑤레기'라 단언한다. 몸을 단련하고 인생을 바꾸는 공부, 즉 무술하듯 일상 전체를 온몸으로 공부하는 '호모 쿵푸스(Homo Kungfus)'가 돼야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공부란 그런 것이었 듯.
공부의 의미가 뒤틀리기 시작한 건 근대 이후 정착된 '학교' 탓이 크단다. 삶의 모든 것이 공부가 되는 걸 포기하게 만들고 모든 교육을 학교가 독점한 시스템 말이다. 학원은 나이별로 표준화된 교육을 시킨다는 학교의 이념을 극단적으로 실현하는 기관일 뿐. 아이러니하게도 공부의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독서도 '학교 공부' 때문에 포기하는 지경에 이른다. 점수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책읽기는 시간 낭비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논술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느냐고. 논술 공부란 미명 아래 줄거리를 요약하고 '생각할 점'도 정리한 다이제스트 류의 '패스트푸드'식 독서가 횡행한다. 생각의 정의는 '사람이 머리를 써서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인데, 논술 책들은 '생각'조차 대신해주겠다며 호기를 부린다.
남이 대신 해주는 생각을 고스란히 주입받는 교육 때문에 사람들의 꿈도 붕어빵이 돼 버렸다. 좋은 학교 나와서 취직 잘하고 돈 벌어 아파트 마련해 멋지게 꾸며놓고 사는 삶 말이다. 지은이는 인문학의 위기도 거기서 온다고 주장한다. 스타벅스 커피는 사 마셔도 책은 살 줄 모르는 대학생, 연구비를 타려고 온갖 프로젝트를 죽어라 따내는 교수 등 지성의 전당에 있는 이들이 독서인이 아닌 소비문화의 주체로만 머물기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인문학의 위기를 타파하려면 교수들이 먼저 "능동적 지식 활동, 앎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운동을 조직해야한다"고 강변한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할까.
"공부란 책을 읽는 것이고, 책 중에서도 고전과 접속하는 것이다. 독서는 결코 선택이나 취미가 아니라 필수며, 특히 고전 읽기를 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고전이라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할 터. 고전을 갈아 혼자 씹어먹겠다는 욕심을 버리면 의외로 쉬워진다. 지은이는 여럿이 모여 고전을 소리내 암송하는 공부법을 제안한다. 소리를 음미하다 보면 뜻이 환하게 밝혀지기도 하는 법. '구술'도 효과적인 공부법이다. 책을 읽은 뒤 천편일률적 독후감을 쓰는 게 아니라 자기식 어법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제대로 된 글쓰기다. 지은이는 극소수 전공자들끼리만 나눌 뿐 대중과 소통할 능력이 없는 대학의 글쓰기를 '자폐적'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독서 모임 등 '앎의 코뮌(자치 공동체)'을 조직해 함께 공부하면 공부의 효과는 배가된다. 나이도 학번도 점수도 중요치 않다. "공부 앞에선 초발심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어린이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부는 세대간 장벽을 허물고, 젊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일 수밖에.
지은이가 몸 담고 있는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대표적인 '앎의 코뮌'이다. 이곳 네 명의 연구자가 공부.놀이.예술.언어 등 네 가지를 화두삼아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세대공감 달인 시리즈'를 냈다. 네 주제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이 책을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지은이는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를 지극히 대중적이고 청소년 눈높이에 맞는 글쓰기로 풀어낸다.
이경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