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부 6백돌 기념사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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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994년은 서울을 도읍으로 정한지 6백돌이 되는 해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은 간혹 서울을 가리켜「얼굴」이 없다고들 한다.
이는 전난에 찢기고, 일제에 의해 지워지고, 너나 할 것 없는 부동산 노름에 일그러진 오늘날 서울의 자태가 세계 여느 역사도시들과는 달리 그「고도다움」을 잃고 있다는 지적 일게다.
이점에서 최근에 민관협동의 기획팀이 발족하여 「서울의 재발견, 새 서울의 창조」라고 하는 기치아래 서울 6백돌을 기리고자 하는 각종 기념사업들이 추진되고 있음은 범시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기념사업의 내용은 각종 편찬, 전시 및 옛 의식의 재현을 중심으로 하는 서울 다시 알기, 남산 제모습 찾기, 사적지 복원, 서울 6백년 기념 조형물 건립 등을 위한 환경 가꾸기, 시립박물관 및 미술관 건립, 전통 문화동네 조성 등을 목표로 하는 문화 일구기, 그리고 옛도시 풍물의 재현을 주제로 하는 6백년 큰잔치 등 4개분야 45개 사업에 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6백돌 기넘사업의 기획은 과연 「누구의」몫이어야 하나.
기념사업의 추진을 위하여 이른바 각계각층의 시민 대표로 짜여진 「시민위원회」와 관련전문 관료로 이루어진 「기획지원단」이 구성되어 있어 겉으로는 시민이 참여하고 관이 돕는 민관 협동의 모양새를 띠고있다.
하지만 시민 위원회의 역할이 주로 사업계획을 위한 자문 및 심의기능에 머물러 있고 기획추진은 기획지원단에 의해 이끌어질 것으로 보이는 현구도에 비추어 볼 때 시민위원회는 다분히 관제 여론화의 도구로 전락할 여지를 안고 있다.
또 하나의 과제는「누구에 의해」추진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우리의 약점은 항상 너무 서두르고 허세부리는데 있다.
서둘러 관권을 발동, 멀정한 옛집을 헐고 대규모 상징 조형물을 짓는 등 너무 「큰 잔치」벌이기에 급급하지 말아야 한다.
88올림픽 때에도 엄청난 재화를 투입, 큰잔치를 벌였건만 기대와는 달리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 확산된 바가 별로 없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던가.
비록 규모는 작더라도 시민적 공감대에 뿌리를 둔 사업들이 시민에 의해 추진되어 나아갈 때 비로소 시민의 심금을 울리는 6백 돌잔치가 무르익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것이 「누구를 위한」사업인가 하는 점이다.
멸실된 사적지를 복원하거나 상징 조형물을 건립하고 각종 축제를 준비함은 모두가 뜻깊은 일이긴 하다.
하지만 교통·환경·주택 등 심각한「서울의 아픔」을 같이 나누고 있는 우리 서울 보통시민들의 공감대에 바탕을 둔 절실한 것이 아닌 이상, 전시적 기념 사업들은 전문계 일각의 한건 기회주의 내지는 관의실적 행정주의로 끝날 조짐 또한 없지 않다.
94년은 이제 바야흐로 2년밖에 남지 않았다.
각종 기념 사업의 목표 연도이기에 뭇 사업들이 졸속으로 끝나버릴 우려가 있다.
차라리 이 기간동안 학계·언론계·시민계가 중지를 모아서 다가오는 21세기를 살아갈 우리의 다음세대에 물려줄 서울다운 서울의 얼굴을 되찾아 나가기 위한 청사진을 정성꼇 만들자.
그리하여 94년을 「정도6백돌 기념의 해」로서보다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서울 다운 되찾기 운동」의 원년이 되도록 함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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