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에서 산수·풍속까지 「장르의 벽」깬 다양한 화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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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당 금은호전을 보고…이규일(월간미술 편집위원)
「이당 금은호전」이 열리고 있는 호암 갤러리는 마치 「동양화 백화점」같다.
한 작가의 전시회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화면이 펼쳐진다.
인물·화조·산수는 물론 어해·초충·기명·사군자·풍속화까지 동양하의 모든 영역을 섭렵한 이당의 주옥같은 작품이 걸려 있다.
이당(1892∼1979)의 특장인 인물화만 해도 초상·신선·미인도가 각각 다른 맛을 보여준다.
다른 작가의 전시장과 달리 작품이 밑그림(하도)과 나란히 걸려 있는 점도 유독 눈길을 끈다.
이같은 대조 전시는 이당의 인물화가 「판박이」그림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
예컨대 이당이 1927년 6회 선전에 출품했던 『책성』 맞은편에 걸려 있는 밑그림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밑그림에는 담배·재떨이·성냥이 없는데 작품에는 재떨이 위에 피우다 만 담배가 놓여 있고 그 옆에 성냥을 그려 넣었다.
밑그림에는 없던 새장과 나무도 보인다.
이는 작가가 밑그림을 완성해놓고 뒤에 본 그림을 그려도 작업하면서 얼마든지 새로운 화면을 구사할 수 있다는 창작성을 보여주는 실례가 아닐 수없다.
유족들에게 삼고초려가 아닌「십고초려」로 얻어내 전시하게된 『민영휘초상』은 하도·유지본·정본이 완벽하게 갖춰져 초상 그림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는 조지훈의 시가 방금 입에서 읊조려지는『승무』(1959년작)가 관람객을 모아 세운다.
협전·선전에 냈던 『승무』와는 달리 과감히 얼굴을 정면으로 다룬 점이 자신감에 넘쳐있다.
이당이 1929년 의재 허백련과 함께 한 북경 여행에서 의재의 우정어린 배려로 암표를 사중국 제일의 여장 미남배우 매난방 공연을 보고 소재를 얻었다는 『매난방』그림은 세 점이나 출품되었다.
이당이 1938년 창덕궁에서 어여머리 장신구·대례복을 빌려다 미모의 부인 원여사에게 입혀 촬영했던 사진을 바탕으로 1970년에 제작한 『황후 대례복』은 완벽한 세필의 묘법으로 한국적 색상의 조화를 이룬 명작으로 꼽힌다.
북화기법으로 그린 『풍악추명』, 남화정신을 살려 수묵 담채로 그린 『방야독서』는 퍽 대조적이다.
이 두 점의 그림에서 남화산수가 판치던 시절 극채화 산수를 그린 이당의 고뇌와 양변성을 읽을 수 있다.
이당은 생전에 『미술은 인공적으로 자연물을 그대로 표현하는 기교며, 그 기교가 완벽한 연후에 비로소 예술적 진미가 나오는 법』이라고 강조, 남화의 「상」보다 북화의 「기」를더 존중했던 작가.
하지만 이번에 출품된 몇점의 청묵산수가 말해주듯 이당은 결코 산수화를 못 그리는 작가가 아니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한가지 유감스런 점은 출품되었어야 할 『순종초상』등이 소장기관의 과보호(?)로 끝내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점이다.
그러나 호암 갤러리의 배려로 이당이 그린 창덕궁 대조전 벽화 『백학』이 복제로라도 애호가들에게 보여진 것은 다행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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