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 무지 드러낸 결의문 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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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여성단체의 결의문이 당초 의도와는 달리 작성·공표돼 뒤늦게 이를 수정하는 등 한바탕 해프닝을 벌였다.
정무제2장관실은 14일 오후 6시 여성단체 실무책임자수련회 참가자 일동 명의로 된 결의 및 건의문을 언론기관에 보냈다.
정무제2장관실 주최로 13∼14일 서울 올림픽유스호스텔에서 「사회발전과 여성단체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여성단체 실무책임자 수련회에 참석한 46개 단체 실무자들이 성폭력 추방운동에 앞장설 것을 결의하고 관련법 제정 등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관계기관에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4개항의 촉구사항과 1개항의 결의사항으로 된 이 결의문에서 말썽을 빚은 것은 「성폭력 예방 및 규제 등에 관한 법률」을 국회에서 조속히 제정, 시행해줄 것을 촉구한다는 첫 항과 성범죄를 유발하는 지나친 노출 복장과 늦은 귀가를 자제하는 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한 마지막 조항. 「성폭력 예방 및 규제 등에 관한 법률」은 민자당이 13일 강선영·주양자 두 국회의원의 공동제안으로 국회에 제출한 성폭력 관련 법안의 명칭. 성폭력 관련 입법을 둘러싸고 여성단체연합이 「성폭력 대책에 관한 특별법」 안을 내놓고 있는데다 민주당도 「성폭력 행위의 처벌과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안의 공청회까지 마친 후라서 성폭력 관련 입법을 둘러싼 각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있는 상태. 따라서 결의문이 유독 민자당의 법안명칭을 지적한 것이 여성계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것.
게다가 「성범죄 유발…」 운운은 참가자들의 결의문 채택당시 들어있지 않은 조항임에도 불구하고 정무제2장관실에서 이를 임의로 넣은 것으로 드러나 수련회 참가대표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같은 난센스가 벌어진 것은 수련회에 참가했던 여성단체 실무자들의 성폭력 관련법에 대한 무지와 참가자들의 「결의문 일임」을 확대해석한 정무제2장관실 관계자의 월권행사 때문.
성폭력 관련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자면서도 법안의 진행 사항을 전혀 몰라한 참석자의 법안명칭 제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을 보였던 것.
또 정부측에서는 자구 손질과 관련기관에의 결의문 발송만을 일임받았음에도 지금까지의 여성운동 방향과 상반되는 「유발…」 운운의 운동전개를 결의하는 월권을 했던 것.
이 결의문 소동은 15일 오후 여성단체들의 항의로 문제조항을 「성폭력을 예방하고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으로 하고 마지막 조항은 삭제하는 것으로 수정해 관련기관에 발송함으로써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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