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살인(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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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레밍」이라는 이름을 가진 종류의 쥐는 번식이 극도에 달하면 집단으로 물에 빠져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마전 미국 메릴랜드주 국립정신치료연구소가 실험한 바에 따르면 「레밍」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쥐들은 「과잉 혼잡」에 대해 매우 사나운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 숫자가 정도를 넘게 되면 쥐들은 갱단을 조직해 닥치는대로 암컷을 범하고 새끼들을 마구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그 「과잉혼잡」에 대한 이상반응이 사람에게는 스트레스의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갖게된 스트레스가 성과 관련된 새디스트적 흉악범죄나 연쇄살인의 중요한 동기를 제공한다는 것이 연구결과로 나와 있다.
62∼64년사이 미국 보스턴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은 대표적인 예로 손꼽힐만 하다. 20대부터 80대에 이르는 13명의 여성을 변태적으로 능욕한 다음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한 범인 앨버트 데살보는 체포되고 나서 자신의 성적대상이 되었던 여성이 1천명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백이외에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종신수로 복역하던중 동료 죄수에게 피살됐다.
13명이나 살해했는데도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는 것이 다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지만 일반적으로 성과 관련된 살인사건은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보통 살인사건이 충동적이고 우발적인 경우가 많은데 비해 성관계 살인사건은 계획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86년 9월 첫 사건이 발생한 이래 10명의 희생자를 낸 화성연쇄살인사건은 똑같은 성관련 살인사건이라는 점외에도 피해자중 고령의 여성이 포함돼 있다는 점,수사에 단서가 될만한 증거를 거의 남겨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스턴사건과 비교된다.
그러나 그쪽의 범인이 1년6개월만에 검거된 반면 이쪽의 범인은 6년이 다 돼가도록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그런 가운데 화성에서 얼말 떨어지지 않은 용인에서 또 성폭행당한 여중생이 피살돼 알몸으로 암장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젠 「과잉혼잡」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나 탓하고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답답하기만 하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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