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에 이용된 「PC 가짜통장」/정 대리 컴퓨터 어떻게 조작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예금잔액 허위입력 프린트 시켜/은행 진짜통장과 구별 거의 곤란
제일생명이 사옥부지 대금조로 국민은행창구에 예치한 2백30억원이 증발한 이번 사기사건에는 컴퓨터가 동원됐다.
사건에 연루된 국민은행 정덕현대리가 제일생명측에 만들어 준 가짜통장이 바로 컴퓨터로 조작된 것.
그러나 이 개인용 컴퓨터(PC) 통장이란 것이 그리 대단한 수준의 지능적인 범죄수법은 아니다. 통장을 손으로 직접 써주는 대신 컴퓨터를 이용해 만들어 주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요즘 모든 은행일은 컴퓨터를 통해 처리된다. 고객이 1원을 예금하거나 10원을 대출받아도 모두 본점 컴퓨터에 입력된다. 전국 각 지점의 창구에서 입출금이 있으면 창구직원들이 책상위에 놓인 컴퓨터를 통해 거래내용을 즉각 입력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국민은행 정 대리가 제일생명에 만들어준 PC통장이라는 것은 은행의 컴퓨터가 아니라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해 순전히 개인적으로 만들어준 것. 83년 8월 명성사건때 상업은행 혜화동지점 김동겸대리가 거액 예금주들에게 손으로 쓴 통장(수기통장)을 만들어 주던 것이 PC로 대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 대리가 자신의 컴퓨터에 예금잔액을 허위로 입력한 후 이를 프린트시켜 제일생명측에 건네주었다는 것이다.
정 대리는 이같이 가짜 통장을 만들어주면서 은행컴퓨터와 글자체가 비슷한 컴퓨터 프린터를 이용했으며 따라서 얼핏 보아서는 은행컴퓨터를 통해 공식적으로 출력된 통장과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이번 경우는 인출금액은 대형이지만 범죄수법은 단순한 편이라고 말했다.<심상복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