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기르는 프로 골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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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약 0.1~0.2㎜ 정도 자라는 손톱. 손톱과 골프 스윙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무슨 흰소리냐”고 묻는 분도 있을 법하다. 솔직히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 수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 손톱과 골프 스윙은 전혀 무관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로 세계에서는 다르다. 아마추어 고수들 가운데서는 “이 친구. 뭣 좀 아네”하고 피식 웃는 분도 계시리라.

투어 프로들 중에 유난히 손톱에 정성을 들이는 선수가 적지 않다. ‘치장’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골프 스윙을 위한 몸 만들기의 가장 기초적인 과정으로 생각하는 프로들이 많다는 의미다.

한국 프로골프 사상 처음으로 프로 데뷔전에 이어 2주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최상한가’를 치닫고 있는 김경태(21ㆍ남서울CC)도 그렇다. 그의 열 손가락 손톱은 매니큐어(Manicure)를 준비하는 여자처럼, 또는 클래식 기타 연주자처럼 길다(클래식 기타 연주자는 주로 오른손가락의 핑거링에 의한 주법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손톱을 길게 기른다).

‘손톱이 그렇게 길면 장갑을 착용할 때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스윙이 안 된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스윙이 안 된다고?”
“네.”

답은 더 명료했다. 손의 감각이 떨어진다는 얘기였다. 그립을 쥐는 악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래서 김경태는 대회를 앞두고는 절대(!) 손톱을 깎지 않는다. 설령 손톱을 깎는다 하더라도 바짝 깎지 않는다. 거의 다듬는 수준이다. 손톱을 너무 바짝 깎으면 손아귀 힘이 떨어지고 그립한 손의 감각도 둔해져 스윙의 흐름마저 망치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경태가 좀 유별난 것일까. 국내 최다승 보유자(통산 43승)인 최상호(52ㆍ캬스코) 프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손아귀 힘과 감각이 떨어진다”는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손톱에 정말 많은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최 프로는 아예 손톱을 깎지 않는 쪽에 더 가까웠다. 대회가 끝난 뒤에 조금 다듬을 뿐.

강욱순(41ㆍ삼성전자ㆍ통산 16승) 프로는 더 철저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일요일 대회가 끝나면 월요일에 손톱을 정리한다. 월요일에 손톱을 깎고 나면 대회가 시작되는 목요일쯤이면 항상 같은 손가락 감각을 유지한 채 플레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아마추어 골퍼들이 들으면 ‘좀 유난스럽다’고 할지 모르지만 프로 선수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임팩트 순간 그립한 손의 악력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손의 감각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자만 그럴까. 여자 투어 프로 15명과 이 얘기를 나눴다. 그랬더니 무려 12명의 선수가 거의 같은 이유를 들었다. 물론 극히 일부는 “의식을 하지 않은 채 손톱을 정리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손아귀 힘과 손의 감각이 떨어진다’는 선수들에게 다시 물었다. ‘일종의 자신만의 미신 같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그러나 한결같이 ‘미신은 아니다’고 부인했다. 그러고는 “발톱을 너무 바짝 깎았을 때의 느낌을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반문했다.
독자들께서는 혹시 이런 경험을 해보셨는지. 필자는 오래전 라운드 전날 손톱을 바짝 깎았다가 그립이 잘 잡히지 않고 손아귀 힘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한 이후 라운드 필드 약속이 있는 주에는 손톱을 절대 깎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골프가 그만큼 예민하다는 뜻이 아닐까. 어쨌든 프로들의 세계를 알면 골프가 더 훤히 보인다.
 
JESㆍ일간스포츠 골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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