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대응 미흡" 한화 망연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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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2시간이 넘는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끝에 결국 김승연 회장의 구속 영장이 발부되자 한화그룹은 망연자실한 분위기였다. 이날 밤 11시쯤 영장 발부 사실이 알려지자 서울 서초동 법원 주변에서 서성대던 임직원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회사 관계자들에게 전화로 보고했다. 서울 장교동 그룹 본사에서 TV 뉴스를 지켜보던 직원들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이날 오후 김 회장이 자신의 혐의 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 시인을 하면서 한때 법원 주변에선 '불구속 가능성'이 흘러나왔기 때문에 실망감은 더했다.

한화그룹은 영장 발부 직후 김 회장 명의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금춘수 경영기획실장 등 그룹 고위 임원들은 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진 직후 그룹 본사에서 심야 회의를 하고 향후 대책을 숙의했다.

◆ 김 회장 사과문 발표=김 회장은 사과문에서 "누구보다도 사회에 모범을 보여야 할 신분으로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신중하게 처신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사건 초기 안일하게 개인적인 일로 치부한 데다 이 사건과 무관한 그룹까지 구설수에 오르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며 혐의 사실을 부인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 회장은 그룹 임직원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을 표시했다. 수사 초기, 그룹 측이 "경찰이 여론을 등에 업고 무리한 수사를 펴고 있다"며 반발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톤이다.

김 회장의 구속에 따른 경영 공백이나 비상 경영 체제 전환 가능성에 대해 한화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1993년 김 회장이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구속됐을 때도 경영에 관한 중요한 결정은 옥중 재가를 통해 차질없이 이루어졌다"며 "이번에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룹 안팎에서는 김 회장의 구속이 장기화될 경우 대외 신인도 하락이나 해외 사업 차질 등이 빚어질 수 있으며, 이에 따른 경영 타격도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 위기 관리 능력 미숙했다 자성=한화 그룹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이 미숙했다는 자성론도 나오고 있다. 초기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짜임새 있게 대처하지 못하는 바람에 오히려 사태가 커지고 여론도 나빠졌다는 것이다. 구속 직후 김 회장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하며 몸을 바짝 낮춘 것도 이런 지적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현상.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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