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박살 난 한나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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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당사 주변엔 '당헌 무시 발의, 백만 당원 통탄한다' '당헌.당규 말살하는 중재안이 웬 말이냐' '중재안은 위헌이다. 저지하자'란 격한 내용의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謹弔(근조) 한나라당'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에게 탈당을 요구하는가'란 피켓도 여기저기 보였다. 모두 강재섭 대표와 그의 중재안을 규탄하는 내용이다.

11일 한나라당 당사에선 급기야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한 명과 경찰 여러 명이 다쳐 피를 흘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시작은 오전 11시30분쯤에 '혁신안 원안 고수' 등의 머리띠를 두른 친박(親박근혜 지지) 성향의 당원 등 100여 명이 강 대표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당사 진입을 시도하면서다.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이를 막아선 경찰과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밀고 밀리기가 반복되면서 현관문이 깨지고 부상자가 발생했다.

뒤이어 이들은 현관문 앞에 주저앉아 농성을 벌였다. 오후엔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이란 단체 소속 노인 50여 명까지 가세했다.

이들은 "강 대표의 경선 규칙 중재안은 무효다" "강재섭은 나와서 무릎을 꿇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명박 후보는 정당의 기능을 마비시키지 말라" "이 전 시장은 한나라당의 원칙을 깰 거면 노무현의 품으로 가라"는 주장도 이어졌다. 시위대는 강 대표와 이 전 시장을 싸잡아 비난했다.

'한나라당 당원 권익 찾기 운동본부'라고 밝힌 당원들은 별도 성명을 내 "경선 룰을 놓고 박근혜.이명박 두 예비후보 간 첨예한 대립과, 중심을 잡지 못하는 지도부의 행태에 분노마저 치솟는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 소속이라는 남동호(55)씨는 "8월의 대선 후보 경선은 당원 중심으로 가야 옳다"며 "단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시위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이강성(74) 회장은 "강 대표가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데 한쪽에 치우쳐 당이 와해 위기에 처해 있다"며 "우리는 제2의 6.25 참전용사가 된 마음으로 오늘 한나라당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날 상황에 대해 박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친박 시위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박 전 대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저지했는데도 그런 일이 벌어진 모양"이라며 "안타깝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부담스러워 했다.

이 전 시장 측 한 관계자는 "강 대표의 중재안 제시를 계기로 경선 룰 논란이 매듭지어졌으면 했는데 분란이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3김 시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지지자들의 광신적 집단행동 아닌가"라며 "폭력 사태로 확산될까 걱정된다"고 비판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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